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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진화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020년 11월
평점 :
원체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실험실'을 다루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 의구심이 들었다.
새로운 '기술'은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이건 돈을 벌 수 있는 신산업과 직접적으로 이어져서 그런듯) 과학? 이미 예에에에에에전에 누군가가 모두 증명해놓은 것을 배우는 건 재미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과학은 내 진로에서 아주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과학이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초등학생때가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과학을 정적인 학문으로 배워온 것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일찍 잃게 한 원인인 것 같다.
실험실만 해도 그렇다. 중고등학생 때 (폼으로) 흰 가운을 입고 비이커와 몇몇 약품들을 만지작대다가 종 치기 5분전에 정리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실험의 전부였다. 이 책은 실험을 '호기심과 열정, 경쟁심과 연대감으로 살아 움직이는 공간', '역사를 바꾸는 조용하고도 치열한 혁명의 현장'이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만 보면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마냥 뜨거운 광장 같은 것이 떠오르지만 실험실에 대한 설명이 맞다. 이 책은 그런 실험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 개념에 대한 설명? 없다. 정말, '실험실'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실험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과학적 발견과 과학자가 언급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험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사용된다.
실험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실험'하면 떠오르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이미지,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생명체들인 모델 생물, 대학 학부생들을 위한 실험실의 도입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냥 이 책이 전부 '실험실'이 주제인 알쓸신잡 같다) 앞서 과학은 이미 '보편적으로 증명된 지식'이어서 재미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 책은 2부 실험실의 진화 챕터에서 그 이야기도 빼먹지 않는다. 이미 확고한 사실이 된 과학 지식인 '블랙박스'와 반대로, 실험실은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 science-in-the-making'의 장소라는 것이다.
특히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소크 연구소에 관한 내용이었다. 일전에 건축 관련 책에서 소크 연구소의 건축학적 의의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정말 '건축학적으로 무엇을 고려하여 설계했으며 어떤 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지, 실제로 그 연구소를 사용하는 과학자들이 그 건물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몰랐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연구소 연구원들에게 칸의 멋진 건축물은 그저 일상적인, 그리고 오히려 조금 불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뒷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 손그림이 너무 섬세하다… 실제 자료 참고가 필요할 경우 QR코드를 넣어둔 것도 포인트였다 책 구성 하나하나에서 공을 들였다는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