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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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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작가인 네주 시노가 어린 시절 본인의 양아버지로부터 당한 성적 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 2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직면해야만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1부의 내용은 역겹다, 화가 난다, 미친 것 같다 - 같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 너, 이걸 써야 해. 책으로, (......) 그들이 읽게 해야 해. 그들이 책장을 찢어 내고, 삼켜 버리도록 만들어야 해.

작가의 담담한 문체가 오히려 나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었고, 책장을 계속해서 넘기게 만들었다.

2부의 경우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비틀린 기대, 요구와 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담았다.

🔖 날것 그대로의 잔인한 현실을 거부하는 것, 그것은 오히려 회피 전략이 아닐까? 우리가 행위를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일종의 모호함 속에 머물러 있게 되고, 독자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부정의 대열에 동참한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나 자신에게 질문을 했는지 모른다. 진정한 문학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왜 그동안 실제 일어나는 범죄-특히 성범죄-가 관련되어 있는 책을 읽으면 불쾌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진실을 회피하려고 했던건가?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도 여전히 그 질문 중 몇 개는 내 곁을 남아 떠돌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고,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꼭 읽어봐야하는 책이다. 직면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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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붙게 해 주세요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5
이로아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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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 재이와 함께 기순고에 진학하게 된 윤나는 설렘 속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해요. 하지만 재이와 다른 반이 된 이후로 둘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죠. 그 틈을 파고들 듯 새로 부임한 교장은 학교를 ‘정상화’하겠다며 강압적인 변화를 밀어붙이는데, 교칙은 엄격해지고 사라졌던 야간자율학습까지 부활해요.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윤나의 담임이 ‘전교 1등을 하면 야자를 빼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던지죠. 미용학원을 포기할 수 없는 윤나는 전교 1등이 되기 위해 묘책을 떠올리는데, 그게 바로 강령술이에요.

그렇게 불러낸 전교 1등 귀신 순지. 하지만 순지가 윤나를 도와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답니다.

”너희 학교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치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

이 작품은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학교가 오히려 학생들을 강압적인 구조 속에 밀어 넣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때로는 자신만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모두를 위해 **자신만의 선택**을 하죠. 그 선택이 때로는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은 틀림 없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아요. 저는 이 소설을 학교라는 공간을 넘어, 사회와 개인의 관계로도 읽게 되었어요. 정상화라는 말로 포장된 통제, 질서를 이유로 정당화되는 폭력과 억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워지는 목소리들. 이건 교문 밖의 세상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장면이잖아요.

정상화 같은 소리를 운운하면서… 결국 원점으로 돌아갈 거라면. 이 세상은 주기적으로 누군가가 죽어야만 정신을 차리는 걸까.

반복되는 ‘정상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왜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어야 할까요.

그래도 결국 이 이야기는 학교 안에서 시작해서 학교 안으로 돌아와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부딪히는 교실, 복도 그리고 학교의 규칙들. 어른들이 멋대로 정한 질서 속에서 상처받고, 고민하고, 떄로는 위험한 선택까지 하면서도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아요.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하고, 버티고, 바꾸려고 하죠.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그렇게 만들어진 학교의 작은 변화가 그 다음에 들어올 아이들에게 확실히 전해진다는 것이었어요. 학교는 어른들이 운영하지만, 결국 학교라는 공간을 살아내고 선택하는 건 청소년들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이 분명히 보여주는 거죠. 어쩌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건, 학교가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청소년들의 선택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곳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 변화가 사라지지 않고, 다음 아이들에게 건네질 수 있다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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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달려 온
연여름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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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연여름 작가의 단편소설집『밤을 달려 온』은 8가지의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진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도 연여름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2학기 한정 도서부』와『빛의 조각들』을 읽고『부적격자의 차트』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새로운 단편 소설집이 나와서 이걸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내가 연여름 작가의 세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SF이기도 하고, 무언가 일상과 닮아있어 생각할 점을 주기 때문이다. 이 도서, 『밤을 달려 온』역시 비슷한 이유로 재미있게 읽었다. 몇몇 단편이 보여주는 세계는 SF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웠지만, 판타지 역시 불호인 장르는 아니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잠깐 놀랐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일상과 닮아있다는 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을 두 개 소개해보려고 한다.

하품 - 꿈 설계자 이곤과 그의 VIP 고객 호연의 이야기

책의 뒷표지에 쓰여있는 ‘아이가 부모를 면접 보는 세상, 당신은 합격할 자신이 있습니까?’가 이 단편에 대한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게, 꿈을 더 이상 꿀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돈을 주고 꿈을 사고 파는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호연은 이곤이 설계해준 꿈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집착같은 애착을 보이기 시작하고, 이는 이곤이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소원을 알게 된 이후로 더욱 심해진다.

통제할 수 있는 꿈과 달리 현실은 불완전함의 연속이다. 누구와 살아가든 그건 달라지지 않는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현실이 불완전함의 연속이라서 더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캐트닙 네트워크 - 시간 여행 능력을 가진 길고양이와 배우 지망생 승주의 이야기

이 단편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책은 역시『2학기 한정 도서부』였다. 분위기가 비슷하달까, 단편집이 아니라 위픽처럼 단편소설로 나와도 괜찮을 법한 결말까지 정말 좋았다. 얼떨결에 1943년 경성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이소와 승주, 일제 치하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민까지. 엔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좋았다.

시간 산책이 나만의 것이 아닌 이상, 이 세상은 애초에 시간이 구겨진 결과로서 존재하는 거 아닐까? 아무리 제자리를 지키려고 애써도 결국 세상의 시공은 서로가 서로를 늘 간섭하고 있었던 거 아니냐고. 왜냐하면, 이름 없는 고양이는 언제나 어디에나 늘 있으니까. 그리고 있어 왔으니까.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이 책은 연여름이라는 작가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은 사람, SF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여덟 개의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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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의 마지막 새
시빌 그랭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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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눈 앞의 존재가 스러지면 하나의 종 전체가 멸종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멸종이라는 단어는 너무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문득 '아, 프로스프가 사라지고 나면 큰바다쇠오리라는 종 전부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거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또 어떨까.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세상에 정말 딱 하나 남은 큰바다쇠오리 프로스프와 그를 통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오귀스트의 이야기이다.

상상 이상으로 잔혹하고 무자비한 큰바다쇠오리 사냥 현장에서 오귀스트가 도망쳐나오는 큰바다쇠오리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인간은 짐승을 잡아먹고, 짐승은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다. 그게 세상의 법칙'(41p)이라고 생각하는 오귀스트는 프랑스의 박물관에 큰바다쇠오리를 넘겨줄 요량으로 끊임없이 그것을 관찰한다. 기세 좋게 올라오고 있는 새로운 털과 같은 세세한 외양부터 부리를 움직이는 방식의 미묘한 차이까지. 하지만 그는 깨닫고 만다. '그 새가 큰바다쇠오리의 방식으로 자기에게 더없이 상냥한 미소를 짓고'(76p) 있음을.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가 그에게 자기를 내맡기고 있음'(78p)을. 그의 눈 앞에 온전하게 살아있는 이 새가, 자신을 삶의 터전에서 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그를 믿고있음을. 그래서 그는 큰바다쇠오리에게 이름을 붙인다. 프로스프, 행복의 전조 같은 것을 담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멸종'이라는 단어와 프로스프를 연결짓게 된다. '지구는 풍요 그 자체'이고 '한 종류가 아주 완전히 없어지는'(127p)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공고했던 인식 자체가 무너진 것이다. 프로스프가 이제 지구 상에서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단 하나 남은 큰바다쇠오리라는 사실은 무덤덤한 문체로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존재는 지상에서 가장 외로운 동물이었다. 귀스와 엘린보르네 집에 사는 자기네 종의 유일한 동물, 자기 주위의 사람들과 공통된 언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동물, 이제 큰바다쇠오리라 할 수도 없게 되어버린 동물." (147p-148p)

앞으로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과 깊은 유대감을 쌓아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아프게 느껴지는 와중에 또 아름다웠다. 전혀 다른 종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하나뿐인 친구이자 반려자가 되는 이 과정이 속속들이 아름다웠고 눈을 뗄 수 없었다. 귀스가 프로스프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을 읽을 때 즈음에는 당연하게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스프의 여정을 책을 읽어내려가며 함께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 기억해야한다. 프로스프의 깃털이 얼마나 가벼운지, 물속에 들어가면 얼마나 힘이 센지, 물고기를 잡을 때 얼마나 민첩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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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6
위수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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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매니저, 연극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해서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깊은 주제까지 탐하는 매력적인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랐던 키워드는 [가면]이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들처럼 ‘나’와 ‘또 다른 나’가 분리되어있는 느낌?

셰익스피어가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배우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기옥과 윤주, 태인과 상호는 모두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만 같았다. 불쑥 솟아오르는 기옥을 향한 윤주의 이기적인 마음과 그녀를 ‘해치고 싶어’지는 마음 그리고 태인을 동경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처지에 환멸과 분노를 느끼는 상호까지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게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무대가 끝나고도 ‘가면을 내려놓는 연기를 하는’ 등장인물들, 과연 이들의 ‘진짜 나’는 누구일까? 이들은 어떤 결말에 다다를까?

우리는 글렀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막이 내리고, 밤이 오고. 악몽을 꾸며, 사람을 만나고, 박수 치고, 안부를 묻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병들고, 앓다가, 그렇게 쇠락하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거겠지.

-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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