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이라는 신화 - 인류를 현혹한 최악의 거짓말
로버트 월드 서스먼 지음, 김승진 옮김 / 지와사랑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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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유네스코는 모든 인간이 동일한 종에 속하며, '인종'은 생물학적 실재가 아니라 신화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류학자, 유전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이 모인 국제 패널에서 방대한 연구를 일별해 발표한 성명이었다. (서문 中)

생물학적으로 인종 간 차이는 종으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는 없다. 오히려 인종 간의 차이보다 집단 속의 개인 간 차이가 현격히 크다. 하지만 슬프게도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과학적 테이터를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인종'이란 실재가 아닌 허구의 문화적 개념이라는 성명이 세상에 발표된지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인종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건재하고 있다. 

세계적인 인류학자 로버트 월드 서스먼은 이 책을 통해 스페인 종교재판, 식민지시대와 노예제, 근대의 우생학과 나치즘, 현대의 반이민 정책까지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인종주의의 역사를 통해 15세기부터 현재까지 인종주의의 형태와 왜 사람들은 인종주의를 믿어왔으며, 어떻게 변화해왔고, 어째서 지금까지도 만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인종주의는 크게 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이 이주하는 과정에서 환경적, 사회적 영향으로 점차 퇴락한 인종이 발생했다라고 주장하는 '일원발생설(퇴락설)'과 인류와는 다른 별도의 기원에서 유래하는 후손이 존재하여 인종마다 생물학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라고 하는 '다원발생설(선아담인류설)', 두 가지 가설로 나눠진다. 초기에는 일원발생설이 좀더 영향력이 컸지만 점차 인종간의 생물학적 능력이 다르고 위계가 존재하며 태생적으로 백인이 아프리카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아인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다른 인종에 대한 인간성을 부정하는 가혹한 대우는 정당하다는 다원발생설이 우세하게 된다. 흄이나 칸트 같은 저명한 철학가들도 인종주의적 인류학을 주장했으며 다윈의 종의기원이나 멘델의 유전학 역시 인종주의를 주장하는데 사용되었다. 

인간을 여러 인종으로 분류하고, 그 인종 간의 위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우생학은 유럽에서 싹을 틔우고 미국에서 발전했으며 결국 독일에서는 아리아인만이 우월하다는 히틀러의 논리아래 유태인, 집시 등 타민족을 박해하고 제거에까지 이르는 나치즘으로, 미국에서는 단종법 같은 최악의 형태로 나타났다. 독일의 나치와 미국의 우생주의자들의 교류와 상호작용은 결국 강제적 단종수술, 집단학살 같은 끔찍한 만행을 이라는 형태로 이어졌다. 

독일 나치의 특정한 민족 집단들에 대한 절명 정책은 말할 것도 없이 잔혹하고 절대 일어나선 안되었을 일이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더 놀라운 것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이러한 사실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이후에도 미국의 인종주의적 우생학자들은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여러 인종 집단이며, 집단 간의 역량은 유전적이고 선천적인 것이기때문에 환경이나 문화적 개입으로 변화하지 않으며, 노르딕 인종이 다른 인종에 비해 월등히 우월하기 때문에, 인종의 퇴락을 가져오는 인종 간 혼합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아래 우생학자들이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민족 집단, 정신박약자, 빈민처럼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집단으로 분류되는 이들에 대해 강제로 혼인이나 출산을 금지하는 혼혈 금지법, 단종법, 이민 금지법 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실행해왔다. 

하지만 미국 인종주의적 우생학은 인종을 인류학적 문화 개념으로 인식하고 각 민족 집단의 차이는 타고난 능력 때문이 아닌 환경적, 역사적, 문화적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를 시작으로 점차 늘어나는 과학적 연구와 객관적 탐구를 바탕으로 우생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학자들과 각각의 민족은 서로 다른 문화가 존재할 뿐이며 대부분의 정신적, 신체적 특징은 유전자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 그가 자라나는 문화와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문화인류학과 환경결정론에 밀려 점차 그 힘을 잃어갔다. 

흔히 백인, 흑인, 유색인이라고 구분하는 가장 큰 외관적 특징인 피부색은 태양 복사 에너지 양과 관련되어 있으며,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라시아, 아메리카, 대륙 각지로 이주 하면서 그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따라 적응의 결과일 뿐이다. 인종적인 특질이라고 여겨졌던 요소들은 환경적, 행동적 요인일 뿐 특정한 유전적 요인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속적으로 과학적 발견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반이민 정책이나 극우주의, 민족 집단 사이에는 다름만 존재할 뿐 위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음모론으로 몰고, 과학적 인종주의를 통해 신체적, 기질적 특질과 유전적인 상관관계를 주장하며 인종 간 혼합이 퇴락을 가져오기 때문에 분리하고 추방하고 배척해야 한다는 과거와 비슷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행하는 크고 작은 행동들을 보자면 인종주의는 여전히 우리 인식 속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종주의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도덕적 판단과 과학적 사실들을 통해 인종이라는 단어를 통해 일어났던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이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 역시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인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일군의 특정한 유전자빈도를 가진 인구 집단일 뿐이며 이주, 자연선택, 사회적, 및 성적 선택, 돌연변이, 무작위적인 유전적 부동 등으로 유전자빈도는 계속해서 달라진다.(Farber 2011)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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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 - 악마의 무늬가 자유의 상징이 되기까지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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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는 인간과 공간 사이의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공간은 기하공간이자 사회적 공간이다.' (P215)

스트라이프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하며, 자주 사용하는 무늬 중 하나이다. 줄무늬가 들어가 의복, 장신구, 실내장식, 기호나 표지, 심지어 줄무늬 마을로 불리는 곳도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줄무늬가 서양 중세시대에는 타락, 혐오, 스캔들의 상징이었다면 믿어지는가?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자 색채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며, 서양 중세 상징사, 파랑의 역사, 빨강의 역사 등을 통해 색과 상징, 기호에 대한 책들을 다양하게 저술한 미셸 파스투로가 우리에게 이번에 들려주는 주제는 <스트라이프>다. 12~13세기부터의 방대한 자료를 통해 줄무늬에 담긴 사회적, 문화적, 기호학적 역사는 스트라이프가 단순한 무늬를 넘어 사회적 구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얼마나 유용하였는지, 시대에 따라 얼마나 변화무쌍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중세에서 21세기까지 시대의 흐름 속 변화의 과정을 다양한 사료, 칼라 도판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줄무늬의 역사는 그야말로 시대별 다채로운 상징성 만큼이나 역동적이다. 서양 중세시대 문학작품, 예술, 도상 등에서 등장하는 줄무늬를 착용한 사람들은 대체로 악마, 반역자, 창녀, 광대, 수형자, 사생아, 불구자, 집시 같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척받는 사람,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타락시키는 자들이다. 단순히 관습적으로 배척된 것만이 아니라 14세가 프랑스에서는 종교적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공의회에서 명령한 줄무늬, 체크무늬 옷을 금지를 어겼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한 기록도 있다고 한다. 다른 지역들에서도 배척받고 사회에서 제명된 위치의 사람들에게 줄무늬 옷을 착용하게 하거나 장식품을 걸치게 하는 등의 의복에 대한 규제가 법률로 규정되어 있었다. 문학이나 예술에서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중세에도 모든 줄무늬가 부정적, 배척의 이미지만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가문이나 집단을 상징하는 문장에서 사용되는 줄무늬는 높은 지위나, 가문의 체계적인 구분이 가능하도록하는 표상이기도 했다. 


줄무늬는 하인들의 제복으로 주로 사용되면서 예속의 상징이기도 했다가 이후 점차적으로 귀족적이고 가치 있는 무늬로, 부정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갔으며, 16세기부터 19세기 유럽이 근대에 들어서고 낭만주의 시대를 거쳐가며 줄무늬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 그 의미 뿐만 아니라 구조적 형태, 사용처, 색이나 배열 등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을 통해 줄무늬는 혁명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에 사용된 국기, 휘장, 깃발, 의복, 다양한 장식에서 줄무늬를 볼 수 있다. 특히 줄무늬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프랑스 혁명 당시 줄무늬는 과거 중세 시대에 소외,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것과는 또 다르게 혁명이라는 가치에 대한 동조의 표현, 집단과 본인의 사상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줄무늬의 경멸과 배척의 의미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긍적적, 부정적인 상반된 두 의미 모두로 사용되어갔다. 근대의 죄수복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줄무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또한 유럽어권의 언어에서 ‘줄을 긋다’는 배척하거나 삭제, 금지의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도 ‘줄을 긋다’가 사람에게 사용되는 경우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경멸과 배척, 예속과 속박, 귀족적인 의미, 낭만과 혁명, 자유, 보호, 천박함과 고상함, 위생적, 시각적 의미까지, 줄무늬에 담긴 역사는 실로 다채롭고 흥미롭다. 줄무늬라는 상징을 통해 사상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 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고정된 가치관과 굴레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만들었는가 였볼 수 있었다. 

스트라이프는 하나의 이미지가 담고있는 상징,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소재였다. 더불어 기호와 상징을 얼마나 이해하는냐에 따라 그 시대의 문화, 예술, 문학 작품을 더 깊고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한번더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색, 무늬, 형태들에는 또 어떤 역사와 의미가 담겨 있을까 궁금해진다. 기호와 상징의 세계는 역시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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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세시풍속
고성배 지음 / 닷텍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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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놀랐다. 매일매일, 1년 365일 만큼이나 다양한 세시풍속이 존재할 줄이야.

알고보니 단오에 청포로 머리 감기라던가 동지에 팥죽 먹기 같은 잘 알려진 풍속 외에도 쑥 연기 쐬기, 꿩알 줍기, 연줄 끊기, 검불 태우기 같은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는 세시풍속이 무궁무진하다.



클라우드 펀딩을 시작으로 <한국 요괴 도감>, <동양 요괴 도감>, <검은 사전>, <SF 괴수괴인 도해백과> 등을 통해 요괴, 악마, 괴수괴인, 찻잎점술, 고문헌 속 식물과 묘약 같은 기기묘묘한 소재들을 소개해 온 .TXT 닷텍스트(구 The Kooh)의 편집장이자 저자 고성배. 이번에는 그가 한국 세시풍속으로 돌아왔다.



2월 11일 경칩이자 연인의 날, 연인끼리 서로 은행을 주고 받고 연인과 함께 은행나무를 함께 도는 풍습인 ‘은행 선물하기’, 12월 10일 집 안에 귀신을 쫓는 의식 ‘메밀 삶아 뿌리기’ 같은 세시풍속들이 음력 1월부터 12월까지 음식, 금기, 놀이, 행동 365개의 풍속을 풍속 일자, 이름, 주로 행해졌던 지역과 시기, 기재된 문헌, 풍속의 내용과 이해를 돕는 개성 있고 귀여움 가득한 일러스트를 통해 다양한 세시풍속을 해당 날짜에 맞춰 실행해볼 수 있도록 편집되어있다.



세시풍속이란 ‘해마다 일정 시기에 되풀이하여 행하는 우리 고유의 풍속’을 말한다고 한다. 농경사회 풍속으로 대개 농사력에 맞추어 관례로 행했던 일들로 대체적으로 가정의 안녕을 빌고, 집안의 복을 부르고, 잡귀와 재액을 물리치고자 하는 기원이 담긴 다양한 비방들이 이에 속한다.



부잣집의 흙을 가져와서 자신의 집에 바르거나 마당에 뿌리는 ‘복토 훔치기’나, 남의 벼에 돈을 묶어 두었다가 그 벼를 베어(주인의 양해를 구한다고 한다) 밥을 해 가족이 함께 먹으며 자식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하는 ‘벼에 돈 묶기’같은 풍습을 보면 좋은 뜻으로 생각하자면 복을 이웃과 나눈다는 의미일테지만 복토 훔치기의 경우에는 흙을 몰래 훔쳐오는 풍속이라고 하니 어떻게 생각하자면 복을 훔쳐 자신도 잘 살고 싶다는 염원이 담겼다는 생각에 애달프기도 하고, 그 시대에는 땅과 논밭이 얼마나 귀한 재산이고 부러움의 대상인가에 대해서도 역시 잘 알 수 있었다.



2월에 행하는 바람 점, 좀생이 점, 삼성 점, 개구리울음 점, 11월의 날짐승 점, 팥죽 점, 새알심 점, 고드름 점처럼 농사의 풍·흉년과 다음 해의 길흉화복을 점치기 위해서일까 유독 2월과 11월은 자연환경, 음식, 동식물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점을 치는 풍습이 많은 것 같아 보인다.



음력 2월 초 손바닥만한 송편을 나이 수대로 먹으면 한 해 동안 건강해진다는 ‘나이떡 먹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럼 중년 이후에도 과연 나이 수대로 저 크기의 떡을 다 먹을 수 있을까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보고, 음력 1월 돼지의 날에 콩가루로 세안을 하면 얼굴이 희고 고와진다고 하여 그 날은 콩가루로 얼굴을 세안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우리 조상님들도 피부관리에 관심이 많으셨구나하는 생활감 넘치는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시대와 자연환경,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이루어졌던 풍속들이다보니 지금봐도 과연 옛 조상들의 지혜는 훌륭하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풍속부터, 음...어째서?라는 의문이 살포시 드는 지금으로보자면 독특하다고 느껴지는 풍속들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결국 세시풍속이란 자신이, 가족이, 한해가 풍요롭고 행복하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해졌던 것. 365가지 풍속들 속에 그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풍속은 유감주술에 기본을 두고 있다고 한다. 현상을 모방함으로써 유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원리로, 책 속에 소개하는 세시풍속을 따라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도 해볼 수 있는 풍속이 있나 주의깊게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 일단 1월 1일 ‘콩알 볶기’는 가능하겠다. 콩을 볶으면서 ‘쥐 주둥이 지진다’라고 외치는 것인데 쥐가 곡식을 훔쳐먹는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 행해지는 풍습이라고 하니 곡식은 아니지만 내 통장 어딘가 새어나가는 돈도 좀 줄어들지도 모르지 않는가. 물론 내 경우는 원인이 쥐가 아니라 나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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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 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루크 키오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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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식물 운반용 상자 ‘워디언 케이스(Wardian Case)’ 이 책의 소개를 보기 전까지 들어본 적 없는 명칭이다. 하지만 이 생소하기까지 한 상자는 한 세기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살아있는 수많은 식물과 환경을 싣고 전 세계를 이동했으며 현재 우리 주변 식물 환경에 거대한 영향을 준 물건이기도 하다.



워디언 케이스는 1833년 영국의 아마추어 박물학자이자 의사인 너새니얼 백쇼 워드에 의해 소개되었다. 워드는 1829년 산업혁명으로 심해진 대기 오염 때문에 자택의 정원에서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리병을 밀폐해 온실과 유사한 환경을 만드는 등의 여러 실험을 통해 밀폐된 유리 상자에서 식물이 물 없이 장기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워디언 케이스를 제작하게 되었고, 1833년 친구이자 해크니 종묘원의 대표인 로디지스와 함께 양치류 등의 식물을 담은 이 상자 두 개를 배에 실어 그 당시 런던에서 갈 수 있는 가장 긴 항로였던 런던에서 시드니까지 6개월에 걸친 항해를 거쳐 무사히 목적지에 식물이 살아있는 상태로 도착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었으며 그 이후 워디언 케이스는 식물 이동의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물론 워디언 케이스 이전에도 식물이 이동은 있었지만 고비용에 비해 성공 확률이 무척 낮았던 과거 방식들에 비해 이 상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중요 농작물과 희귀 식물의 대규모 이동에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었다. 식물 애호가의 호기심에서 탄생한 상자인 만큼 양치류, 식충 식물 같은 희귀 식물이나 처음보는 외래 식물들을 수집하고 장식하는 용도로도 많이 사용되었으나 그 이상으로 경제적, 약리적 목적으로 더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이 시기 유럽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각지를 식민지배 하던 시절로 바나나, 고무나무, 차 같은 경제적 가치가 큰 식물을 식민지로 이식하여 대규모 상업 플랜테이션 농장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워디언 케이스가 많이 사용되었다. 19세기 중국차에 대한 유럽의 열풍은 상상이상이었고 특히나 영국인들의 홍차 사랑은 각별했다. 그로 인해 중국으로의 은 반출의 부담이 커지자 그 당시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은 대신 지불하여 중국 인구의 대부분이 아편에 중독되고 그 결과 중국이 아편 수입을 금지하는 과정에서 결국 아편전쟁으로까지 번질 정도였으니말이다. 영국은 같은 이유로 중국의 차 나무를 식민지에서 대규모로 재배하고자 스코틀랜드 정원사인 로버트 포춘 등을 비밀리에 파견했고 그들는 워디언 케이스를 이용해 2만 그루 이상의 차 묘목을 인도로 운반했다.



워디언 케이스 전파에 많은 도움을 준 워드의 지인 중 한 명인 후커가 관장으로 있던 영국 왕립 식물원 큐 식물원의 세세한 기록들을 통한 식물 이동의 기록들은 그 당시 식물 채집 탐사와 운반, 이식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졌는지, 아름답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식물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식민지에서의 노동 착취, 아동 노동 등 진취적이고 탐구적이며 욕망 가득하고 잔혹하기도 한 다양한 면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한 세기 넘게 식물 이동의 큰 축을 담당한 워디언 케이스의 마지막은 씁쓸하다. 흙을 넣어 토양을 만들어 살아 있는 식물을 운반한다는 것은 식물 뿐만이 아니라 병충해 역시 함께 이동을 한다는 것이었고, 묘목, 과일 등과 함께 들어온 해충과 식물병은 이식된 지역의 삼림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세기 초 워디언 케이스는 관상용 식물, 경제성이 높은 작물을 담은 가치 높고 효과적인 상자에서 해충을 옮기는 위험한 도구로 점점 인식이 탈바꿈되어갔고 그 용도 역시 변경되어, 결국 해충의 천척을 이동하는데 이용되는 등 식물을 위협하는 해충에 대한 방제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그 마지막을 장식했다.



19세기 식물애호가의 호기심에서 탄생해 등장부터 환영받았으며 한 세기동안 식물과 함께 전세계를 횡단하며 환경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워디언 케이스의 여정을 통해 이제는 기억 속에 거의 사라진 이 작은 유리 상자가 인간의 역사와 식물 환경에 남긴 큰 자취와 그 속에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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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 뇌인지과학이 밝힌 인류 생존의 열쇠 서가명강 시리즈 25
이인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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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25번째 강의는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이인아 교수가 뇌의 학습과 기억의 관계,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의 차이점 등을 뇌인지과학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간다. 최근에 읽은 뇌과학 관련 책 중에서 가장 편하게 읽은 책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였던 기억에 대한 부분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잘 설명해주고 있어 과학책이라는 무거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과거 철학에서 탐구했던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현대 과학은 뇌라는 중요한 부위를 통해 또 다른 방향에서 답을 찾고 있다. 자신을 ‘나’라고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기억일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쌓아온 기억이 나를 만든다. 아마도 점점 더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지고 관련 서적이 나올 때마다 눈길이 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자신의 마음, 기억, 행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뇌가 지금의 형태로 진화해 온 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의 뇌는 학습과 선택을 반복하며 진화했다.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이해하려는 사회적 뇌 인지 기능 역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발달해왔다. 연비를 고려하면 뇌는 슈퍼컴퓨터보다도 훨씬 효율적이라고하니 이 얼마나 훌륭한 진화의 산물인가.



뇌의 기능과 역할은 알면 알수록 신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별다른 의식 없이 일상적인 활동을 하고 기억을 축적하는 동안 사실 우리의 뇌 안에서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1000에서 만 개의 시냅스로 연결되어 거대한 신경망을 만들어 신체를 적절하게 움직이고 일상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고도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매순간 변화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평생 학습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체의 기관 중에서 가장 바쁜 기관이기도 한 셈이다.



메멘토,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나 실제 환자의 경우를 들어 길을 찾거나 문을 열거나 자전거를 배우는 것 같은 행동을 몸으로 기억하는 절차적 기억과 장면을 떠올리거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일화기억, 회상, 재인 같은 서술적 기억, 해마, 뉴런, 신경망, 치매, 파킨스병, 알츠하이머, 인공지능까지, 뇌의 각 부분별로 어떤 기억을 저장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왜 기억은 완전하지 않은지, 이인아 교수가 들려주는 뇌인지과학의 연구 결과는 무척 흥미롭다.



기억은 사진이 아니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과거에 있었던 일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보면 큰 줄기는 같아도 세부적인 상황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그 이유는 뇌는 상황을 핵심적인 부분만 저장하고, 그 기억을 꺼내는 과정에서 빈 공간을 그럴듯하게 메꾸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의 상황을 자신이 납득할만한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경험을 활용해서 재해석하고 재구성한다고 하니 그렇게보자면 기억이란 일종의 저장물의 2차 창작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갑자기 내가 기억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까하는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아직도 뇌는 비밀이 많은 공간이다. 각 부위가 가지는 기능과 역할은 차례차례 밝혀지고 있지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다. 뇌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간섭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것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역시 의문이다. 그럼에도 과학은 발전할 것이고 언젠가 뇌에 대한 신비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두렵고도 기대된다.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 것이고, 지금 나의 가장 큰 궁금증과 걱정은 기억의 상실이나 노화의 문제일 것이다. 신체의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마지막까지 나는 나 자신이고 싶으니까 말이다. 저자는 기억의 노화를 더디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뇌를 계속 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오늘도 책을 읽고 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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