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 - 악마의 무늬가 자유의 상징이 되기까지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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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는 인간과 공간 사이의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공간은 기하공간이자 사회적 공간이다.' (P215)

스트라이프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하며, 자주 사용하는 무늬 중 하나이다. 줄무늬가 들어가 의복, 장신구, 실내장식, 기호나 표지, 심지어 줄무늬 마을로 불리는 곳도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줄무늬가 서양 중세시대에는 타락, 혐오, 스캔들의 상징이었다면 믿어지는가?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자 색채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며, 서양 중세 상징사, 파랑의 역사, 빨강의 역사 등을 통해 색과 상징, 기호에 대한 책들을 다양하게 저술한 미셸 파스투로가 우리에게 이번에 들려주는 주제는 <스트라이프>다. 12~13세기부터의 방대한 자료를 통해 줄무늬에 담긴 사회적, 문화적, 기호학적 역사는 스트라이프가 단순한 무늬를 넘어 사회적 구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얼마나 유용하였는지, 시대에 따라 얼마나 변화무쌍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중세에서 21세기까지 시대의 흐름 속 변화의 과정을 다양한 사료, 칼라 도판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줄무늬의 역사는 그야말로 시대별 다채로운 상징성 만큼이나 역동적이다. 서양 중세시대 문학작품, 예술, 도상 등에서 등장하는 줄무늬를 착용한 사람들은 대체로 악마, 반역자, 창녀, 광대, 수형자, 사생아, 불구자, 집시 같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척받는 사람,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타락시키는 자들이다. 단순히 관습적으로 배척된 것만이 아니라 14세가 프랑스에서는 종교적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공의회에서 명령한 줄무늬, 체크무늬 옷을 금지를 어겼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한 기록도 있다고 한다. 다른 지역들에서도 배척받고 사회에서 제명된 위치의 사람들에게 줄무늬 옷을 착용하게 하거나 장식품을 걸치게 하는 등의 의복에 대한 규제가 법률로 규정되어 있었다. 문학이나 예술에서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중세에도 모든 줄무늬가 부정적, 배척의 이미지만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가문이나 집단을 상징하는 문장에서 사용되는 줄무늬는 높은 지위나, 가문의 체계적인 구분이 가능하도록하는 표상이기도 했다. 


줄무늬는 하인들의 제복으로 주로 사용되면서 예속의 상징이기도 했다가 이후 점차적으로 귀족적이고 가치 있는 무늬로, 부정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갔으며, 16세기부터 19세기 유럽이 근대에 들어서고 낭만주의 시대를 거쳐가며 줄무늬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 그 의미 뿐만 아니라 구조적 형태, 사용처, 색이나 배열 등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을 통해 줄무늬는 혁명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에 사용된 국기, 휘장, 깃발, 의복, 다양한 장식에서 줄무늬를 볼 수 있다. 특히 줄무늬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프랑스 혁명 당시 줄무늬는 과거 중세 시대에 소외,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것과는 또 다르게 혁명이라는 가치에 대한 동조의 표현, 집단과 본인의 사상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줄무늬의 경멸과 배척의 의미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긍적적, 부정적인 상반된 두 의미 모두로 사용되어갔다. 근대의 죄수복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줄무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또한 유럽어권의 언어에서 ‘줄을 긋다’는 배척하거나 삭제, 금지의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도 ‘줄을 긋다’가 사람에게 사용되는 경우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경멸과 배척, 예속과 속박, 귀족적인 의미, 낭만과 혁명, 자유, 보호, 천박함과 고상함, 위생적, 시각적 의미까지, 줄무늬에 담긴 역사는 실로 다채롭고 흥미롭다. 줄무늬라는 상징을 통해 사상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 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고정된 가치관과 굴레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만들었는가 였볼 수 있었다. 

스트라이프는 하나의 이미지가 담고있는 상징,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소재였다. 더불어 기호와 상징을 얼마나 이해하는냐에 따라 그 시대의 문화, 예술, 문학 작품을 더 깊고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한번더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색, 무늬, 형태들에는 또 어떤 역사와 의미가 담겨 있을까 궁금해진다. 기호와 상징의 세계는 역시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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