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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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영미권 작가들 중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조이스 캐롤 오츠(Joyce Carol Oates)서스펜스 스릴러 4편을 담은 중편소설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자 매번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을 보여주는 저자의 고딕 서스펜스라는 타이틀을 건 이번 중편집은 그의 문학성과 장르문학으로서의 재미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은 것만 같다. 오싹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카디프, 바이 더 시>에서 부모를 모르고 입양되어 자라온 클레어는 어느 날 메인주 카디프에 살았던 친할머니 모드 도니걸의 유산 상속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의 흔적을 찾아 고향 카디프에 도착해 수다스러운 이모할머니들과 과묵한 작은 아버지 제러드를 만나게 되고,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 아들, 딸을 살해하고 자살했으며 부엌 개수대 아래에 숨어 살아난 당시 2살이었던 자신이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라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할 수록 과연 진짜 범인은 아버지였을까?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이 성장이 빠른 마야를 괴롭히고, 부모가 이혼을 하여 아버지는 집을 떠나 다른 사람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어머니 역시 재혼을 한다. 새아버지인 패리스는 점점 굶주린 시선을 숨기지 않고 마야에게 욕심을 들어낸다. 가족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매일 밤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마야의 유일한 희망이자 친구, 마야를 사랑해주고 절대 해치지 않는 수호신 같은 존재는 동물 관리국의 습격에서 구조한 하얀색 새끼 들고양이 먀오 다오이다. <먀오 다오>

의도치 않았던 임신, 상대인 사이먼은 의지가 되지 않고, 합법적 낙태는 불가능한 상황, 불안하고 두려운 그때 도움을 주는 듯한 나이가 많고 저명한 대학교수 롤런드 B가 다가온다. 하지만 멘토처럼 다가왔던 그 역시 앨리스에게 원한 것은 여성으로서의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경제적, 사회적 도움을 주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고, 한편 신학자를 꿈꾸던 사이먼은 앨리스의 임신 사실과 롤런드와의 관계를 알고 앨리스를 찾아온다. <환영처럼 : 1972>

<살아남은 아이> 20세기 초반 사상주의 시인을 연구하는 엘리자베스는 알렉산더와 재혼을 한다. 그의 그의 전처인 베스트셀러 페미니스트 시인, 급진적 시로 유명한 N.K.는 아이들과 함께 자살을 시도하고 스테판만이 살아남았다. N.K.를 끊임없이 비난하는 알렉산더, 어딘가 유령과도 같은 스테판, 알렉산더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집 전체를 감도는 N.K.의 흔적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점점 몽환적인 불안감에 시달린다.

네 가지 이야기에는 불안감과 불길함, 마치 악몽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클레어, 마야, 앨리스, 엘리자베스에게 가족, 사회, 남성은 친구나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닌 그들을 위협하고 통제하려 들고,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보이는 상황은 너무나도 공포스럽다. 집, 학교, 일상적인 공간이 잔잔하면서도 음산하고 공격적인 공간으로 한순간 탈바꿈된다. 의심과 증오, 복수와 절망, 그리고 그 속에 작은 희망까지 담고 있는 4편의 작품 모두에서 보여지는 억압된 여성의 삶,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와 함께 마치 미완의 이야기와도 같은 결말이 주는 느낌은 긴 여운을 남긴다. 그 이후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게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끊임없이 맴돈다. 확실한 결말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결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런 결말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방식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1938년 생으로 1964년 데뷔하여 현재까지 50편 이상, 단편 1,000편 이상을 발표했고 84세가 된 지금도 계속 글을 쓰며 버클리 대학 문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60년 가까운 긴 시간동안 왕성하게 활동하고 좋은 작품을 발표한 저자에게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카디프 바이 더 시'는 고딕 소설의 매력과 여성, 아동, 동물, 깊게 생각해보게 하는 주제들까지 그 역량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고 싶은 끌림이 있는 작품을 보여준 저자의 또 다른 책의 출간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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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후드 -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
바버라 내터슨-호러위츠.캐스린 바워스 지음, 김은지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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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의 시각으로 볼 때 청소년기, 소위 사춘기, 중2병이라고도 이야기하는 시기의 행동들은 무모하거나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나 역시도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 시기는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라 성인으로 성장해나가는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 야생 동물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의학박사이자 생태학, 진화생물학 교수인 바버라 내터슨 호로위츠와 과학 전문 기자 캐스린 바워스는 인간이 마주한 난제의 해결책을 자연에서 찾으려고 하는 새로운 분야인 생물영감(bioinspiration) 혹은 생물모방(biomimicryy) 연구를 통해 청소년기, ‘종과 관계없이 청소년기에 공통으로 겪는 경험과 특정 시기’인 ‘와일드후드(Wildhood)’에 동물들이 익히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안전확보, 사회적 지위 학습, 성적 욕구 제어, 어른으로서의 자립이라는 4가지 기술을 학습하고 경험해가는 과정을 탐구하고 우리의 청소년기 행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와일드후드는 지구상 모든 생물이 공동으로 물려받는 유산’이라는 저자의 글은 인상적이다. 킹펭귄 우르슬라, 점박이하이에나 슈링크, 북대서양혹등고래 솔트, 유럽늑대 슬라브츠의 위험천만한 여정은 와일드후드를 지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느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닌 홀로서기에 도전하고 부모, 또래, 주변 성인들을 통해 학습하며 만들어지는 새로운 경험과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킹펭귄 우르슬라는 포식자에게 공격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바다로 뛰어들어 부모의 보호에서 떨어져 홀로서기에 나선다. 포식자 학습은 생존에 큰 위협이지만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을 더욱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을 학습하게 된다. 청소년기에 범죄나 공포, 성인 콘텐츠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사회의 위험을 간접적으로 학습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흥미로웠다. 청소년기의 호기심은 어느 정도 현대사회의 포식자 탐색 활동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동물에게 지위는 중력이나 다름없다.

너무나도 강력해서 벗어날 수 없다.’ (P154)

탄자니아 응고롱고로산에서 태어난 점박이하이에나 슈링크는 모계의 서열이 되물림되는 하이에나의 사회에서 낮은 서열의 어미에게서 태어났다. 야생의 세계에서도 족벌문화와 지위와 특권이 되물림되는 금수저효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슈링크의 여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태어날 때 주어진 사회적 환경은 학습, 서열이 높은 동물과의 관계 형성 등 다양한 조건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 와일드후드는 생존과 직결되는 사회적 서열을 배우고 친구와 무리를 만들고 집단에 적응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제일 중요한 시기이다. 안간 청소년에게도 집단 내 서열의 중요성은 마찬가지다. 사회적 뇌 네트워크가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사회적 지위에 더욱 민감하며 왕따, 무리내 괴롭힘 역시 가장 많이 발생한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적응하고 대응하는가는 성인이 된 후 사회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혹등고래의 구애의 언어인 노래는 세대를 이어 전해지고 청소년기 고래들은 어른 고래에게 사랑 노래를 배운다. 와일드후드에 학습한 구애의 언어를 통해 북대서양 혹등고래 솔트는 북대서양을 오가며 많은 자손을 탄생시키고 이제는 혹등고래 가계도의 대모가 되었다. 슬로베니아 숲에 살던 어린 늑대 슬라브츠는 겨울의 어느 날 가족과 함께하던 터전을 떠나 홀로서기에 나섰다. 동물들이 성장의 시기에 독립에 떠밀리는 현상인 ‘분산’이다. 굶주림과 생존의 위험이 수반하는 그 길은 경험이 미숙한 와일드후드의 늑대에게 매우 위험하지만, 그러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통해 성인이 되어 가족을 만들고 무리를 이룬다.

애도, 인사 같은 야생동물들의 사회적 의례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야생의 세계는 형태는 다르지만 그들만의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와일드후드 역시 그렇다. 일부러 위험한 상황에 돌진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또래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물 청소년과 인간 청소년의 행동은 많이 닮아있다. 성인이 되기 전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 야생 동물들의 모습과 학습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 청소년의 행동을 떠올려보니 지금까지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와일드후드에 그들은 변화화는 환경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른이 되기위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위험에 뛰어들고 학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야생 동물 청소년도, 인간 청소년도, ‘누구나 그 시간을 건너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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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지는 심지어 측정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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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서양 식기의 세계 - 초보자가 처음부터 하나씩 배워가는 서양 식기의 모든 것!
카노 아미코.겐바 에미코 지음, 박서영.김경철 옮김 / 클라우드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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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와 커피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동서양 식기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 카페에서 마이센의 쌍검 커피잔을 본 후 이전까지 식기에 욕심이 없었던 나로서 드물게 이건 꼭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에 집에 오자마자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아름다운 찻잔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고 해야할까. 화려한 서유럽의 브랜드도 심플한 북유럽 브랜드도 어느 하나 눈길이 가지 않는 제품이 없었다.



막상 관심을 가지고 보니 서양 식기의 세계는 엄청나게 방대하고 빈티지나 라인도 다양해서 기초 지식 없는 상태로는 어려운 분야였다. 그러던차에 초보자가 보기 쉬운 서양 식기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나에게 식기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좋은 스타트가 되어 주었다.



저자 카노 아미코와 겐바 에미코 자매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서양 식기 강좌를 진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도자기의 정의, 원료, 유약, 제조방법, 도자기와 문양의 종류를 정리한 '기초지식' / 국가별 유명 브랜드, 브랜드별 히스토리를 담은 '브랜드' / 디자인 도안의 베이스가 되는 미술양식과 각 양식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설명해주는 '미술양식' / 유럽 역사의 중요 흐름과 함께 식기 디자인이 탄생한 배경이 되는 '역사' / 도자기 역사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들을 소개하는 '인물들' / 구입, 보관, 사용 포인트 등을 알려주는 '서양 식기 사용법'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서양 식기에 대한 기초 지식을 단계적으로 알아갈 수 있게 안내해준다. 브랜드 별 대표 식기를 소개해주고 있어 각각의 특색을 잘 알 수 있고 무엇보다 풍부한 사진과 일러스트로 특색있고 아름다운 서양 식기들을 볼 수 있어 눈이 즐거워진다.



12세기 중국 경덕진에서 처음 만들어진 백자는 마르크폴로를 통해 서양에 소개되어 많은 이들을 매혹시키고 17세기에는 금과도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양에서는 그 제작법이 미스테리에 쌓여 있었던 자기는 18세기 초 동양의 도자기에 매료되었던 작센 왕국의 선제후 아우구스트 2세에게 고용된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에 의해 유럽 최초로 경질자기 제조에 성공하였고 <마이센>은 서양 자기의 개척자가 되었다. 작센 선제후이자 폴란드 왕이었던 아우구스트 2세는 자기를 외교에도 이용하였다고 한다. 마이센 도자기는 유럽 왕실간의 최고의 선물로 이용되었다고 하니 그 위상을 능히 짐작해볼 수 있다. 제작가인 뵈트거를 유폐하면서까지 지키려던 도자기 제작법은 떠돌이 장인처럼 유럽의 유명 가마를 전전했던 크리스토프 콘라트 훙거라는 마이센 장인을 통해 제조법 유출되면서 300년이라는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서양 자기는 화려하고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 북유럽, 유럽 각국의 세브르, 웨지우드, 로얄 크라운 더비, 아우가르텐, 헤렌드, 로스트란드, 이딸라 등의 유명 브랜드의 대표 식기, 여러 양식과 도안을 통해 각각의 매력을, 바로크, 시누아즈리, 바로크, 신고전, 아르누보, 아르데코 등 미술 양식에 대한 설명을 통해 도안 모티브가 시대별, 양식별로 가지는 특징과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다.



흰색의 돌을 분쇄하여 가루에 키올린이라는 점토 광물을 첨가해 흙을 만든다. 그 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소성을 하고 유약을 바르고 재벌을 하고 페인팅을 한 후 마지막 소성을 통해 자기가 탄생한다. 복잡한 페이팅의 경우 몇달이 소요되기도 했다고 한다. 자기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알고 나니 서양 식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헌데 문제는 호기심이 생기는 브랜드와 욕심이 나는 제품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마이센 뿐만이 아니라 세브르의 팻 블루가, 로스트란드의 몬아미가, 여러 양식의 컵과 소서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서양 식기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무한한 소장 욕구까지 함께 높여주는 무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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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프로파일러 -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 앤 버지스의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지음, 김승진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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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미널 마인드, 마인드 헌터, 양들의 침묵, 세븐, 조디악,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시그널 같은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프로파일러와 프로파일링 기법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범죄를 분석하고 범죄자를 체포하는데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 연쇄살인범이나 강력범죄를 해결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저자 앤 올버트 버지스는 법과학 및 정신의학 전문가로서 20년 넘게 FBI와 함께 일하였고, 1970년대 간호학 분야 최초로 성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회복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한 전문가이며, 범죄자 성격 연구를 체계화하여 프로파일링 기법을 개발, 설계한 프로파일링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자이다.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는 그가 70년대부터 FBI 행동과학부 컨설턴트로 참여하여 1세대 프로파일러들과 함께 새로운 수사 기법인 프로파일링에 대해 연구, 개발하는 과정,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인을 체포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사례들에 대한 기록, 강연과 법정에서 전문가로서 증언 등의 활동을 통해 범죄와 연쇄살인범에 대해 신화의 대상이 되거나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것을 막고 범죄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피해자들에 대한 회복을 돕기 위해 활동한 저자의 일생이 담긴 회고록이다. 

미국드라마 '마인드 헌터'의 중요 등장인물 중 한명인 웬디 카 박사의 모델이자 프로파일링 기법을 연구하여 1세대 프로파일러 존 더글라스, 로버트 레슬러 등 행동과학부 일원들과 함께 강력범죄 수사 및 분류 시스템인 'FBI 범죄 분류 매뉴얼'을 완성해 체계적인 범죄수사와 과학적 행동분석의 기틀을 마련한 앤 버지스의 최초 회고록이다보니 평소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로선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범죄 분석시에 최초로 피해자의 관점을 도입한 범죄자들의 심리 연구 체계를 수립해 수사 분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통상적으로 흉악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건은 범죄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지고 정작 피해자는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앤 버지스는 평생의 연구의 방향도, 이 책에서도 중요한 것은 피해자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 절대 피해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이 큰 울림을 주었다. 

프로파일링은 총 4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주무 프로파일러가 배경정보, 증거, 수사 기록 등 충분한 데이터를 모아 범죄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파악하는 1단계 '프로파일링 인풋 수집'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점 모두에서 범행을 재구성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2단계 '범행 분석'

살해 유형과 스타일 등 일곱 가지 사건의 핵심 요소를 통해 인식 가능한 패턴과 알려진 범주로 조직화하는 3단계 '의사결정 과정 모델 도출'

주무 프로파일러와 다른 프로파일러들이 함께 검토, 협업, 회의를 통해 '범죄자의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4단계이다. 

심리학, 행동학, 범죄 피해자학, 언어심리학 등 다양한 관점으로 연쇄살인범의 사고방식을 패턴화하고 분석하고 읽어냄으로써, 이해하기 어렵고 불합리해보이는 범죄자의 마음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 작동 논리를 이해하여 범인을 빠르게 파악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이러한 이론을 실제로 적용한 BTK살인자, 유나바머와 같은 연쇄살인범에 대한 프로파일링, 리셀, 켐퍼를 비롯한 여러 연쇄살인범들의 인터뷰 기록들을 통해 범죄자들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앤 버지스가 실제 참여했던 사건들의 실제 녹취기록, 속기록 등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마치 보고서와도 같은 기록들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배와 통제의 욕구가 어떻게 잔혹한 범죄로 발전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 동족 포식자, 시그니처, MO(범행 수법), 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익숙하게 들리는 것은 그만큼 프로파일링과 강력범죄가 익숙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연쇄살인범이 우상화 되고 그 신화가 엔터테인먼트화 되는 것에 대한 저자의 염려는 이미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책에서 등장하는 범죄의 현장과 기록들을 섬뜩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흥미롭게 읽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기때문에 책 전체에 통해 보여지는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라는 주제는 연쇄살인범이나 사건의 엽기성보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 슬픔과 트라우마에 대해 다시 떠오르게 해준다. 앤 울버트 버지스의 수십년간 연구와 활동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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