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 증언 - 미제 사건부터 의문사까지, 참사부터 사형까지 세계적 법의인류학자가 밝혀낸 뼈가 말하는 죽음들
수 블랙 지음, 조진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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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기억은 뇌에만 쌓이는 것이 아니다.

내 몸속 뼈 하나하나에 고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P8)



유기된 신체의 일부, 교수형, 뼈가 말해주는 죽음들, 책을 읽기 전에는 CSI 같은 법의학, 과학수사를 떠올렸다. 잔혹한 사건, 뼈를 조사해서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 이런 드라마틱한 내용들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뼈의 증언’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더 좋았다고 할까. 세계적인 법의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 현재 옥스퍼드 세인트존스칼리지 총장인 수 블랙은 전문적 지식과 차분하고 다정한 시선을 통해 머리, 몸통, 사지, 뇌, 얼굴, 척추, 가슴, 목, 팔이음뼈, 다리이음뼈, 긴뼈, 손, 발, 신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평소 익숙한 부분부터 잘 인식하지 못했던 부위까지 200개가 넘는 뼈가 말해주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머리 없는 시체, 토막나 여기저기에 유기된 신체의 일부, 여행가방에 담겨서 버려진 시체,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뼈조차 태워버린 범인, 현실은 픽션보다 잔혹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사건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저자의 담담한 어조 때문인지 사건의 공포보다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각 부분의 뼈를 통해 성별, 나이, 생전 생활했던 곳, 사망방식, 약물남용 여부, 고문 흔적 같은 대상자의 삶의 흔적을 알아내는 과학적 방식들에 대해 더 눈길이 간다.

의학과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DNA를 통해 머리카락 한 올, 뼈의 작은 조각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과 달리 법의인류학자의 일은 지난한 시간과 많은 체력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두개골과 사진의 중첩 검사를 위해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스코틀랜드까지 피해자의 머리를 운송하는 저자의 여정을 보면서 ‘아니 이렇게 운반을 했다고?’ 하고 재미있으면서도 ‘힘내세요!’ 하고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기술은 발전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역시 DNA는 만능이 아닌지라 피해자가 누구였는가 알아내기 위한 법의인류학자의 업무는 해부학실이나 연구실 뿐 아니라 현장에서 땅을 파고 뼈를 맞춰보고, 뼈의 조각들을 찾아나서며 이루어지고 있다.



사건뿐 아니라 뼈의 역할과 특징 역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 갈비뼈는 거의 수평이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몸을 바라보면서 이 갈비뼈가 평평했다고?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2~3살이 될 때서야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점점 성인의 것처럼 변화한다고 한다. 뼈는 성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형태가 변형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덧붙여 사람의 갈비뼈는 돼지의 갈비뼈와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고 한다. 갑자기 다음에 돼지갈비를 먹게 되면 그 갈비뼈를 바라보면서 내 몸속 갈비뼈가 이렇게 생겼다는 걸까하고 유심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형을 당하면 대체로 2번 목뼈가 골절된다는 글에 2번 목뼈가 대체 어디지..하며 목을 만져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내 몸 속의 뼈가 이렇게나 궁금해지게 만들다니 이 저자 대단하다라고 생각해버렸다.



할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아 자살한 소년의 사례를 통해 성장이 잠시 중단된 후 재개 될 정도의 두려움이나 스트레스는 뼈에도 해리스선이라는 흔적을 남긴다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뼈에는 그 사람의 경험, 습관, 활동의 흔적이 남는다는 저자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법의인류학자는 인간 또는 인간의 유골을 연구하고 뼈의 사연을 읽어내어 그 사람이 누구였는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이다. 어떻게 죽었는지,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지, 심지어는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못한 사람들의 소리없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뼈를 통해 듣고 해석하고 진실을 찾아온 저자의 삶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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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22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nero 2023-10-23 13: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묘약록 - 고문헌 속 기이한 묘약 레시피북
고성배 지음 / 닷텍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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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괴수괴인, 악마에서 세시풍속, 찻잎점술까지 매번 어쩌면 이렇게 흥미로운 주제의 책을 제작하는지 감탄하게 만드는 닷텍스트(.TXT / 구 the kooh)의 고성배 작가. 이번에는 고문헌 속에 등장하는 기이한 묘약에 대한 이야기다.


묘약록에는 동의보감, 본초강목, 향약집성방, 금괘요략, 의방합편 등 한국과 중국의 고서들에 수록된 묘약에 대한 설명, 출처, 특성, 묘약을 만들 수 있는 재료와 사용 용량, 제조방법, 복용법까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질투하지 않게 만드는 거투환, 귀신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견기환, 매를 맞아도 통증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기장산, 소지만 해도 화살이 피해 가고 온갖 독을 중화시킬 수 있는 무성자형화환, 귀신을 죽이는 상귀오사환까지 그 효능도 각가지다. 어떤 묘약은 복용하지 않고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는 것도 있다.


유독 기억에 남는 약 중 하나는 의휘에 수록된 사람 뼈를 먹고 생긴 저주를 치료하는 자단향탕이다. 이러한 묘약이 있다는 점도 신기하지만 무엇보다 저주를 위해 타인의 음식에 인골을 갈아 넣다니 독을 넣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 더 오싹하다. 사람의 원념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하다.


묘약의 종류를 보고 있자면 주로 벽사, 역병 퇴치, 해독, 정신병, 유체이탈 치료 같은 특이한 병 등에 대한 약들이 많다. 귀신에 관한 묘약이 자주 등장하는데 단순히 귀신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꿈에서 귀신을 접했을 때, 합방했을 때, 홀렸을 때 처럼 그 경우가 다양하다. 과거 귀신이란 미신이 아니라 삶과 무척 가까운 존재였다는 것을 다시한번 알 수 있었다. 귀신을 쫓는 방법으로 부적, 굿 같은 퇴치 방법만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약을 통해 치료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현대에도 인기 있을 것 같은 묘약도 눈에 띈다. 베개나 이불 밑에 넣어 두면 잠든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진실을 말하게 하는 자언진정산, 동안으로 만들어 주는 비약 신선고본주, 100일 동안 배가 고프지 않는 천금초 같은 묘약들은 제조해서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구 불러일으킨다. 동안에 다이어트에 진실까지 들을 수 있다니 참으로 매력적인 약들이 아닌가. 물론 귀신을 볼 수 있는 묘약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나도 재료들을 모아 가만히 앉아 동그란 환약을 빚어 보고 싶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묘약의 제조법이다. 서문에도 제조법을 절대 따라서 만들면 안된다는 주의사항이 있지만, 그것은 둘째치고 가장 큰 문제는 재료 구하기다. 오미자, 감초, 황기, 구기자, 인삼처럼 지금도 구할 수 있는 재료도 있지만 대장간 바닥의 흙, 백마의 피, 화석, 인도코뿔소의 뿔 같은 재료들을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하는 것인지. 게다가 쇠망치의 자루, 광물, 사람의 두개골, 동물의 변 같은 절대 섭취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물론 수은이 포함되어 있는 주사, 단사 같은 묘약이 아니라 독약에 사용되어야 할 것 같은 위험한 재료들도 포함되어 있다. 재료를 보고 있자면 제조법을 따라하고 싶어도 도저히 따라할 수 없다는 슬픈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과연 묘약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이런 귀신이라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 귀여운 일러스트, 재미있는 효능들. 이런 약이라면 존재했으면 좋겠다, 이 약도 저 약도 한번쯤 복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묘약들이 가득한 <묘약록>은 매력 가득한 책이다. 과거 의서에 이런 다양한 묘약이 기록되어 있었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궁금했지만 찾기 어려웠던 독특한 주제들을 소개하는 닷텍스트 출판사의 책의 출간은 언제나 반갑다. 다음에는 또 어떤 신묘한 세계로 푹 빠지게 만들어 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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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시옷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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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다시 출간된 것만으로도 기쁜 소식인데 고급스러운 양장본에 외전과 일러스트까지 수록되어 있어 대만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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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화, 붉은 치마폭에 붉은 매화 향을 담다 (표지 2종 중 ‘빨강’ 버전)
서은경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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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걸작그림을 한국만화 화풍으로 담아낸 아름다운 책을 만났다. <조선의 명화, 붉은 치마폭에 짙은 매화 향을 담다>는 2011년 출간된 '마음으로 느끼는 조선의 명화'의 개정판으로 기존에 수록된 정선의 <인왕제색도>김홍도의 <좌수도해도> 등 10편의 이야기에 정선의 <청풍계도>, 전기의 <귀거래도> 2편이 추가되고 책의 내용과 무척 잘 어울리는 표지로 재탄생했다.



나에게 한국화는 어렵다고 생각되는 분야였다. 아무래도 더 자주 접했던 유럽작품들에 비해 간결하지만 뭔가 심오한 의미를 담은 것만 같은 수묵화는 어딘가 다가가기 힘든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저자 서은경이 차주봉과 묘묘를 통해 풀어내는 조선의 명화는 만화라는 형태를 통해 이전보다 작품을 접하기 쉽게 다가왔다. 조금 옛스럽고 정감가는 화풍 역시 그 느낌을 더하고 있다.



그림 작가 차주봉과 그의 친한 동생 묘묘와 함께 하는 12편의 작품과 관련하여 그림에 담긴 화가의 마음, 작품이 그려진 배경,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의 의미, 그림의 표현과 그 당시의 일들을 때로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서, 어느 날의 꿈속에서, 주봉이와 묘묘의 일상을 통해 다채롭게 보여준다.



책은 진경산수화를 창안한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로 시작한다. 예전 교과서를 통해 처음 알게된 작품이다. 우연히도 작년 어렵게 티켓팅에 성공해서 직접 볼 수 있었던 그림이어서인지 어딘가 반가운 기분이었다.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60년지기인 사천 이병언의 쾌차를 바라며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웅장한 인왕산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고 그 아래쪽에 간소한 집 한채. 웅장하면서도 몽환적인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런 이야기가 담겨있었다니, 다시 한번 작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부인의 비단치마를 잘라 결혼한 딸을 위해 그 위에 그림과 시를 담은 <매화병제도>, 묘묘와 미양이의 발걸음으로 따라간 <몽유도원도>,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활을 잠시마나 들여다보게 해준 <사인휘호>, 한국화에 자주 등장하는 나귀나 소를 타고 가는 선비, 발을 씻고, 낙시를 하고 있는 소재들이 많이 그려진 이유, 그 속에 담긴 선비들의 사상과 염원, 이상, 어떤 삶을 살고자 했는지. 다양한 소재에 담긴 의미를 풀어낸 <고사 인물화·산수 인물화>,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한국화에 한걸음씩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작품을 이해하고 그 안에 담긴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화가가 어떤 마음으로 그려내었는지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사전지식 없이 명화를 보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감동과 압도감, 끌림이 있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듯 담고자 했던 의미를 알고 보면 더 깊게 보이고 마음 속에 오래 남는다. 한폭의 간결한 그림 속에 산이, 나무가, 사람이 새롭게 보인다.



한국화를 자주 접하지 못하다보니 처음 보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서라면 한국화와도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이 책의 후속편이 출간되기를, 더 많은 조선의 그림들을 저자를 통해 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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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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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영미권 작가들 중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조이스 캐롤 오츠(Joyce Carol Oates)서스펜스 스릴러 4편을 담은 중편소설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자 매번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을 보여주는 저자의 고딕 서스펜스라는 타이틀을 건 이번 중편집은 그의 문학성과 장르문학으로서의 재미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은 것만 같다. 오싹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카디프, 바이 더 시>에서 부모를 모르고 입양되어 자라온 클레어는 어느 날 메인주 카디프에 살았던 친할머니 모드 도니걸의 유산 상속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의 흔적을 찾아 고향 카디프에 도착해 수다스러운 이모할머니들과 과묵한 작은 아버지 제러드를 만나게 되고,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 아들, 딸을 살해하고 자살했으며 부엌 개수대 아래에 숨어 살아난 당시 2살이었던 자신이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라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할 수록 과연 진짜 범인은 아버지였을까?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이 성장이 빠른 마야를 괴롭히고, 부모가 이혼을 하여 아버지는 집을 떠나 다른 사람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어머니 역시 재혼을 한다. 새아버지인 패리스는 점점 굶주린 시선을 숨기지 않고 마야에게 욕심을 들어낸다. 가족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매일 밤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마야의 유일한 희망이자 친구, 마야를 사랑해주고 절대 해치지 않는 수호신 같은 존재는 동물 관리국의 습격에서 구조한 하얀색 새끼 들고양이 먀오 다오이다. <먀오 다오>

의도치 않았던 임신, 상대인 사이먼은 의지가 되지 않고, 합법적 낙태는 불가능한 상황, 불안하고 두려운 그때 도움을 주는 듯한 나이가 많고 저명한 대학교수 롤런드 B가 다가온다. 하지만 멘토처럼 다가왔던 그 역시 앨리스에게 원한 것은 여성으로서의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경제적, 사회적 도움을 주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고, 한편 신학자를 꿈꾸던 사이먼은 앨리스의 임신 사실과 롤런드와의 관계를 알고 앨리스를 찾아온다. <환영처럼 : 1972>

<살아남은 아이> 20세기 초반 사상주의 시인을 연구하는 엘리자베스는 알렉산더와 재혼을 한다. 그의 그의 전처인 베스트셀러 페미니스트 시인, 급진적 시로 유명한 N.K.는 아이들과 함께 자살을 시도하고 스테판만이 살아남았다. N.K.를 끊임없이 비난하는 알렉산더, 어딘가 유령과도 같은 스테판, 알렉산더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집 전체를 감도는 N.K.의 흔적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점점 몽환적인 불안감에 시달린다.

네 가지 이야기에는 불안감과 불길함, 마치 악몽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클레어, 마야, 앨리스, 엘리자베스에게 가족, 사회, 남성은 친구나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닌 그들을 위협하고 통제하려 들고,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보이는 상황은 너무나도 공포스럽다. 집, 학교, 일상적인 공간이 잔잔하면서도 음산하고 공격적인 공간으로 한순간 탈바꿈된다. 의심과 증오, 복수와 절망, 그리고 그 속에 작은 희망까지 담고 있는 4편의 작품 모두에서 보여지는 억압된 여성의 삶,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와 함께 마치 미완의 이야기와도 같은 결말이 주는 느낌은 긴 여운을 남긴다. 그 이후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게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끊임없이 맴돈다. 확실한 결말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결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런 결말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방식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1938년 생으로 1964년 데뷔하여 현재까지 50편 이상, 단편 1,000편 이상을 발표했고 84세가 된 지금도 계속 글을 쓰며 버클리 대학 문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60년 가까운 긴 시간동안 왕성하게 활동하고 좋은 작품을 발표한 저자에게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카디프 바이 더 시'는 고딕 소설의 매력과 여성, 아동, 동물, 깊게 생각해보게 하는 주제들까지 그 역량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고 싶은 끌림이 있는 작품을 보여준 저자의 또 다른 책의 출간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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