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이야기를 내가 먼저 읽고는 나도 엄마곰처럼 잠자리에서 <모두가 잠에 드는 세가지 잠이야기> 들려주는 상냥한 엄마가 되어보자는 다짐과 함께 이 책은 이야기로만 먼저 들려주어야겠다 생각했다. 나 어릴적 외할머니가 깜깜밤에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들려주던 그때처럼 말이다. 추억 뜯어먹고 사는 나처럼 우리 꼬마도 난방텐트 안에서 #밤의이야기 들으며 보낸 겨울밤을 추억할수 있게 말이다(+맨날 재우고 헛짓거리 할 생각에 빨리 재울 생각으로 가득한 철부지엄마는 일단 실천부터하길) 아이와 소근소근 나눌 이야기책을 만났다. 지-이-이-잉!
<마음을잡으러가는아이>를 읽는데 자꾸 마음이가 내꼬마 같고 주인공(준이)이 나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아이의 마음이 다 할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태도이자 이치를 나는 오늘도 잊고 있었구나 반성하고 깨닫는다. 아이의 말을 끊고, 미루어 짐작하여 속단하고는 안돼!라는 말을 먼저해버리는 급한 엄마인 나. 계속 되는 거절 속에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지 않길 바라기까지 하는 과욕.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들여다 보는 동안 재촉하지 않고 싶다. (어른인 나도 쫓기면 바른 판단이 어렵고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조차 잊는데 말이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잡고 마음을 느끼고 읽어가는 시간 동안을 충분히 기다려주는 나아가 나누는 부모가 되어야지 다짐하며 - 어른이들과 아이들이 함께보면 더 좋을 그림책을 만났다.
죽음을 책으로 배운 꼬마는 책을 열번쯤 읽고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유령이 되어 더이상 할아버지를 안아줄수 없어. 그래서 할아버지가 건이처럼 유령이 된 할머니를 꿈에서 만나는 동안 깨지 않게 길버트가 지켜주는 거야" 조부모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투정을 부리고 전달의 한계를 느끼는 못난 시간동안 꼬마는 나보다 훨씬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꼬마는 다섯살 답게 등장하는 벌레들을 보고 깔깔깔 했지만 말이다. 어른에게는 무겁기만한 죽음을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책을 만났다.
싫어병 심할 나이 5세- 우리집 5세는 처음 읽을땐 한참 깔깔대고 웃더니 두번째 읽을땐 주인공이 빙의된듯 울그락불그락 얼굴도 했다가 세번째 읽을땐 내게 고마워!미안해!사랑해! 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많은걸 통제받는 아이들의 (어쩌면 어른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존재가 그림책이라고 이지은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 아이가 다 표현하지 못하는 없는 깊은 마음을 엄마에게 대신 말해주는 더 없는 그림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