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도 안 먹힐 말이래도 두드려볼 테야. 밑져야 본전이라는데 모.’ 네 마음에 소리가 들리지만 애써 외면해 본다. 본전도 못 찾고 마음에 난 스크래치를 왜 모르겠냐마는 하나하나 다 헤아리기 시작하면 결국 속셈에 말려들 것 같아 사전에 귀와 마음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나는 그렇다. 타협으로 상호 간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모른 척 건성으로 넘기는 것도 전쟁을 피해 갈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 될 때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전적으로 나의 입장이라면 반대편에 선 아이에 입장은 #엄마 귓속에 젤리를 읽어보면 엿들을 수 있다. 왕년에 나도 책 속 주인공처럼 엄마 골탕 먹이기 대작전을 한두 번 펼쳐본 것이 아닌데 단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그것뿐이랴, 친엄마 의구심이 싹틀 때마다 기필코 엄마를 이겨먹고 싶었다.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누구도 반격할 수 없게! 말재간은 날로 늘어갔지만 의견에 타당성이 실리기는커녕 엄마를 더 화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결정의 기로마다 엄마는 늘 내 편에 서있었는데 그놈의 잔소리가 ‘나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왔나 봐’ 의심을 증폭시켰던 거 같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목이 때로는 아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님을 알면서도 다 들어줄 수 없는 사랑의 딜레마에 빠진 양육자들이 함께 읽어도 좋을 이 책은 경청에 중요함을 일깨우고자 한다. 어쩌면 맺음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입장 차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소통은 이어져야 한다고 전하고 싶은 것 같다. 그나저나 귓속에 젤리를 넣어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거 같은 건 나만에 착각일까... “내 말 듣고 있지? 들리니? 들리면 대답 좀! 몇 번 말해?“를 연신 발사해 본다. #우리학교 #호수네책 #책이야기
불과 며칠 전 일이다. 아이를 멀찌감치에서 보고 있었다. 발이 닿는 허리춤 높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풀장에 한 구석에 서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엄마가 내게 다가와서 아이의 수영복이 타이트 하지 않아 잠수를 할 때마다 엉덩이와 생식기가 노출된다고 바지를 입히는게 어떠냐고 했다. 일단은 감사하다고 말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몸이 노출이 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물었다. 아이는 몸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낯선이가 불쑥 다가와 큰일이 난것 마냥 너의 몸을 보았으니 바지를 챙겨입으라고 한 것 자체가 부끄럽고 당황스럽다고 했다. 노출된다는 느낌도, 불편감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여기에서부터 어떻게 아이를 교육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때마침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의 모습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책이 우리에게 왔고 대화는 의도치 않게 몸을 타인에게 보인 것이 잘못된 것이냐에서 부터 시작됐지만 책의 흐름은 잉태의 과정과 태아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우리를 이끌었다. 우리는 모두 여성(암컷)의 몸 속 작은 방안에서 시작된 생명임을 다시 한번 일깨우며 타인에게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을 스스로 아끼는 궁극적 목적에 대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하는 내게 꼭 필요한 책이였다. 다만, 실수로 타인에게 몸을 보여준 것이 수치심을 느껴야 할일인가? 에 대한 부분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는다 #아기는어떻게생겨요 #라임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돌봄이나 복지 직군 종사자는 아니지만 뜻하지 않은 기회에 70세가 넘은 할머니들과 연을 맺었다. 나는 그분들이 마을 안에서 이웃과 연결되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물론 내가 미치는 영역이 미미하지만 그분들을 뵐 때마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못해요. 안해요. 나는 그런거 안해봐서요.“라는 말보다 “해보진 않았지만 배워볼게요. 차근차근 알려주시면 할 수 있을거 같아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와 같은 응답에는 많은것이 내포되어 있다. 용기에는 나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음을 절감한다. 되려 젊음 패기가 때론 독이 되는_젊다는 자만이 실수로 이어지는 경우를 빈번하게 목격한다. 세대 화합은 윗세대를 꼰대로 혹은 아랫세대를 특정 세대로 단정 지어 프레임을 씌우는 사상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어미에 자궁을 통해 세상에 오지 않은 사람이 없듯 우리 모두는 아이였고 노인이 된다는 불변에 이치를 기저에 둔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생로병사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삶에 단계인데 그 단계 중 어리고, 늙은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마치 대단한 희생을 치른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거쳐왔고 다가올 과정이니 말이다. #꼬마할머니의비밀 은 세대간 단절의 골이 깊어지는 요즘을 귀엽디 귀여운 발상과 소재를 빌어 나이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세대를 막론하고 지금 자신이 도착해있는 시간 안에서만 살지 않길 바란다. 분명 시계는 돌아가고 어떤 자세로 삶을 대하느냐에 따라 거꾸로 흐르기도 한다. 위계나 질서보다 앞에 놓인건 소통을 통한 깊은 교감임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책을 만났다 #논장 #호수네책 #책이야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짙은 여름이 오기 전과 후, 딸과 나는 둘이서 그곳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우리는 아웅다웅 요란법석을 떨면서도 꼭 붙어 다니는 단짝이지만 일 년에 한번은 우리 사이에 완충제가 되는 그 남자를 떼어놓고 터전을 떠나 지냈다. 삼각형에서 한 꼭지가 무너져 내리면 균형은 깨지지만 나머지 두 개의 각은 팽팽한 하나의 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끊어질 듯 반듯한 직선으로 겨루다가 곡선이 되고 어떤 날엔 두 점이 만나 원이 되기도 한다. 우리 둘은 그 시간들을 나누며 자랐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하지만 또 하나로. 보통 한 달 남짓 혹은 그 이상 집을 비우니 남편이 한번은 다녀가도 될법한 기간이지만 우리 부부는 그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람이 다녀간 후에 흔들린 아이가 나머지 기간을 아빠를 향한 그리움만으로 지내는 것은 안 떠나느니만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빠와 떨어져야 하는 애틋함을 콩콩이와 동행하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존재였다. 다섯 살에도 일곱 살에도 여덟 살이 되어도 자라지 않고 언제든 배낭에 넣어갈 수 있었다. 나는 그 인형을 애착 인형_그쯤으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콩콩이는 아빠와 집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떠나와서까지 전화기와 노트북을 붙들고 있는 나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까지 받아주는 대상이었다.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에 환기가 필요했던 것은 나였고, 그 시간에 너를 끌어들여놓고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집이 아닌 새로운 곳에 너를 데려다 놓고 원하지 않는 쉼표를 찍어 주는 것으로 우리의 휴가가 완성되었다고 말이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휴가는 낯선 냄새가 나는 호텔이나 멀고 먼 타지가 아니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고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번 휴가에는 노트북도 태블릿도 키보드도 않겠다고 말이다. 지금 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눈을 맞추겠다고 말이다. #여름이오기전에 #문학동네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아이가 나로부터 잘 독립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면 아직 그것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확신하긴 힘들다.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가 스스로 겪어낼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리는 것이 육아의 기초 덕목이라지만 둘 중 굳이 따지자면 나는 기다림이 조금 더 부족한 편에 속한다. 터득하고 납득하는 수순을 거쳐야만 흡수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잔소리가 앞서 튀어나간다. 내 잔소리가 능력치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모든 면에서 나보다 모자랄리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려한다. #고양이와왕 은 용이 나타나 커다란 성을 불태워 버려 성 밖에 살게 된 똘똘한 고양이와 왕이 아닌 삶을 살아보지 못한 왕의 이야기이다. 모든 면에서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고양이에게 생존능력을 상실해버린 왕은 더이상 쓸모가 없어진 부도수표와 같지만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우정을 통해 점점 개인주의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쓸모의 의미를 짚어본다. 앞으로가 빤히 그려지는 상황에도 개입보다 선택을 존중하고 마음을 읽어주는 고양이의 통찰력은 독자로 하여금 절로 감화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왕이 왕으로 존재할 수 있게 도왔던 하인들은 떠났지만 왕은 성을 떠나 살게되면서 비로소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서툴지만 어울림과 생활력을 배워간다. 보육과 돌봄을 떠나 사회속에서 독자 생존해야 하는 어린이들과 닮아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그 누구보다 글밥이 조금씩 길어지는 단계에 도착한 어린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큰것보다 깨알같이 작은 디테일을 잘 찾아내는 아이들이 뒷장 내용을 궁금해하며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숨겨둔 장치가 마중물이 되어 책읽기가 훨씬 즐거워 질 것이다. 잘 건너가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시작에 첫발을 내딛고 나아가기 위해 꼬닥꼬닥 걷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징검다리동화 를 선물하고 싶다 #키다리 #호수네책 #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