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반달문고 43
김태호 지음, 이영림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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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세상은?
공부에 묶여 있지 않은 세상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이 전부인 녀석이 왜 저런 답을 적었는지 잘 알고 있다. 자신에 놀 의지와 관계 없이 놀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탓이다. 태권도 학원에나 가야 잠깐이나마 몸으로 놀 수가 있는데 그 마저도 요샌 아이들끼리 몸을 쓰면서 노는 것이 제한되다 보니 쉽지가 않다. 보통은 하루에 2곳, 많이 가는 친구들은 하루에 4곳까지 학원에 가야한다. 평일에도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여유가 허락된 우리집 아이는 친구와의 놀이가 늘 고프다. 그러다보니 유일한 놀이의 장이 되는 학교의 쉬는 시간은 가장 밀접하고 가까운 놀이터의 의미를 갖는다. 친구들이 단원 평가를 잘 보기 위해 주말에도 학원에 가고, 주어진 목표만큼 암기하느라 애를 쓰는 것을 보며 (과외에 공부하지 않는 것이 불안할 법도 한데🤣😂) 괜찮은지 묻는다. 그것은 위에 답처럼 ’묶여있다‘고 느끼기 때문일거다. 어떤 친구는 스스로 뛰어나기 위해 학원을 선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맞벌이 가정이라 부모님 퇴근까진 학원을 돌 수 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현실이 그러니, 친구와 놀려면 부모들끼리 연락, 아이들 스케줄 조율처럼 여러번 이야기가 오가며 벼르고 벼르는 약속이 된다.

아이들의 놀이, 놀 권리를 비추고 있는 #오늘의놀이가시작되었습니다 가 한장 함장 넘어갈 때마다 거듭해서 ‘현재 아이들은 이대로 괜찮은가?’ 질문하게 된다. 친구들과 역할 놀이로 재잘재잘 하는 것보다 유투버의 영상을 친구 삼아 역할극을 하는 것으로, 서로 규칙을 정하고 작전을 만드는 또래 놀이보다 스스로 구상하고 완성하는 1인 놀이로의 변화를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으로 봐야할지 자문해보며 여섯개의 단편, 여섯개의 이야기 속 여섯개의 놀이가 각기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들여다본다. 관계에서 시작되는 놀이의 부재를 위태롭게 느끼는 것은 나의 기억에 대한 반추 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 책이 아이들을 대신해서_관계 안에 있거나 밖에 있거나, 혹은 소수이거나 다수이거나 함께이거나 혼자이거나 관계 없이 아이들은 각자의 소신대로 놀이를 꾸리고 일구고 있음을 이 책은 말해준다. 상상도 놀이이고, 꿈을 꾸는 것도 놀이이다. 그 놀이에서 우리는 모두 술래가 될 수 있다. 쫄깃한 넌센스 퀴즈 같은 여섯편에 이야기 속에 “엄마, 오늘 산책에는 흰 벽돌만 밟으며 걷는거다!”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서려있다. 그렇게 놀이는 계속되고 있었고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너와 무슨 놀이를 해볼까? #문학동네어린이 #호수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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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빙허각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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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인 내가 좋다. 여러모로 남들에게 읽히기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써야 한다는 중압감이, 쓰면서 누리는 즐거움을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앞선 두려움 때문이다. 호수의 글쓰기에 관여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적당한 무게감을 넘어서 그때부터 나를 들여다보는 글보다 유려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글쓰기에 가까워질텐데 그것은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 젊고 어릴 때에는 예쁘게 쓰는 것이 즐거워서 썼다. 가지런히 적힌 나의 손글씨, 빼곡하게 채워진 다이어리와 내 멋에 취해 남겨둔 기록들이 재미있었다. 요리조리 필체를 바꿔가며 써내려간 호수의 글자들이 귀엽다. 어디서 배웠는지 하루는 둥글 납작했다가 하루는 휘갈겨 쓰고 하루는 궁서체를 흉내낸다. 마치 내가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알아내면 그 단어를 문장에 녹여내고 싶은 마음에 요리조리 써보는 것과 비슷하다. 


#이웃집빙허각 은 여성 최초 실학자 빙허각 선생과 가난한 양반의 딸 ‘덕주’가 훗날 조선에서 유일한 여성 실학자로 불리는 ‘빙허각’과 함께 최초의 한글 실용 백과사전 『규합총서』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역사동화다. 실학의 사전적 의미처럼 그들은 독자 관점의 실용서를 펴내기 위해 치열하게 번뇌한다. 빙허각 선생의 단단함과 덕주의 유연함이 상쇄하고 절충되는 과정을 통해 쌓아가는 이야기의 구조 안에서 역사 속 여성에 목소리가 초석이 되었기에 현재 여성의 목소리와 의견이 수렴되고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하지만 당연시 하지 않아야 하는 귀중함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나 역시 바람직한 여성의 모습을 만들어두고 그 틀 안에서 갇혀 있거나 아이를 가두려 한 적은 없는지 상기시켜본다. 


내가 눈여겨 부분이 있다면, (어쩌면 개인적 관심사와도 연결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빙허각 선생과 덕주의 만남은 세대를 허무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덕주의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만드는 소그룹 친구들이 있듯, 빙허각 선생과 덕주 그리고 도령은 작은 공동체를 꾸린다. 노인과 소녀가 성역없이 이어지기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보니 여인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 보게 된다. 시대적 배경은 물론이고 나이와 신분 모두 수직적일 있는 요소들 갖추고 있음에도 여인은 대등하고 수평적 관계를 이어간다. 글공부를 때는 완벽한 조타수가 되어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가는 길을 밝혀주는 횃불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빙허각 선생이 있었기에, 덕주에게도 힘이 실린 것처럼 그들의 우정도 완벽히 성립된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은 역사동화 라는 장르를 넘어 여성들이 어떻게 세계를 구축해왔는지 들려주며 여성인 우리가 정체되지 않을 동기로 다가온다. 오늘도 깨어있고 내일도 깨어서 여성의 몫과 사람의 몫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보는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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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
김개미 지음, 이수연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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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같은 날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또 같이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에코의 크레이트 위로 양동이로 부은듯 물이 덩어리를 지어 떨어졌다. 윗 세대와 관리사무소가 다투는 와중에도 곰팡이는 번져나갔다. 온갖 사람들이 우리집을 들락거렸다. 벽지가 뜯긴 채 아사리판 같은 집에서 잠에 들어야 했다. 도배만 하면 이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도배가 시작 되던 날, 간밤에 차가 긁혀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긁힘의 정도가 앞 휀다 부터 뒷 휀다 까지. 그러니까 차를 앞부터 뒤까지 뾰족한 것으로 긁고 간 흔적이었다. 고의로 나의 차를 겨냥한 것이 아니기만을 바랐다. 친구는 내게 액막이 명태 악세사리를 선물했다. 그래. 액땜했다 치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안도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심이었다. 그렇게 한달이 흘렀다. 이번엔 호수가 아팠다. 폐렴이라고 했다. 호수는 열흘간 병원에 있었다. 퇴원하고도 일상으로 복귀가 어려워 꽤 오랜기간 통원치료를 했다. 병원을 오가며 장마철이 지나갔다.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어느 날, 아빠의 허리가 부러져 입원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 다음날에는 남편의 셋째 매형이 소천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장례와 병문안을 마치고 집 돌아와 휴- 날숨을 내뱉는데, “골절이 아니라 척추 전이암이고 시작은 폐암이란다....” 엄마의 울먹임과 떨림이 휴대폰을 뚫고 전해졌다. 그날부터 나는 따님이 아니라 보호자님이 되었고 아빠와 생사를 놓고 실랑이 해야했다. 그 과정에 우린 에코와 안녕할 수 밖에 없었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이 날마다 나를 괴롭게 짓눌렀다.

평화로웠던 저녁, 벽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내 불운의 시작의 신호탄일거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몇달간 슬픔, 불안, 그리움이란 통증 속에 있었다. #많은사람들이바다로가 라는 그림책은 부지하는 나의 삶을 반영하는 이야기가 되어 다가왔다. 이수연 작가의 그림은 낙담하지 않으려 마음을 일으켜 세우면 또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나의 매일처럼 느껴졌고, 김개미 작가의 글은 안주하는 태도로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며 <남 일 같지 않다>가 흘러가는 말이 아니라 머무는 말이 되어 담기게 한다. 삶이 가변적이고 유연할 때 방랑할 수 있다. 그럴 때 하는 방랑은 낭만이지만, 타의에 의해 부유하는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과 평행으로 걷고 있다는 것은 지축이 흔들리는 불안이다.

김개미 작가는 ‘표면적으로는 난민이야기로 읽혀질 이 이야기가 각자의 삶의 파도와 바다를 건너는 보통의 개인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인스타 라이브 중) 내면의 근간이 흔들려, 폭풍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사투하고 있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내 집을 갖는 것을 목표가 되어 달리는 사회가 된 것에는 ‘터전’ ‘터’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있었을거란 생각도 해본다. 오늘 조간에서도 만난 ‘핵’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덜컥 무너진다. 안전하게 포근한 잠자리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닐지도 생각하면 마음이 까끌거리고 따갑다. 오늘도 터전을 잃고 표류하고 있을 인류를 위해 나의 시간에 한 귀퉁을 내어 기도해본다. 부디 닿기를 #문학동네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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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가 좋아요 문지아이들 180
신현이 지음, 정주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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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각은 호수가 쏘아 올린 한 문장에서 시작됐다. “엄마, 요즘 읽는 책마다 불쌍한 아이들이 자주 나와서 좀 힘들어.” 나 역시 어린이 동화에서 다루는 주제가 제한적이라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불우함을 소재 삼는 내용들은 유독 그러했다. 물론 대부분 이야기들이 우화적으로 맺음 되기는 하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아는 어른의 시선에선 희망적 메세지가 되려 선선하게 다가왔다. 이 또한 어른의 노파심일테지만 염려가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어린이 독자들이 ‘불쌍하다’라는 감정에 치중되는 것이었는데 마침 호수가 그 부분을 지적했다. 동정이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글을 읽으며 다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증발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하여 #나는언니가좋아요 처럼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켜내고, 주체적 성장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동화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회복탄력성’ 중심을 자신에게로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와 자기 통제와 제어능력을 갖춘 세 주인공을 보며 수축과 이완을 배운다. 한껏 조여드는 지점에서 툭! 하고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 속으로 한걸음씩 걸어 들어가며, 주도적으로 자기의 길을 모색하고 결정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보편적 제안을 던지는 어른들이 부재하여 더욱 반짝이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기 전에 끈을 풀어 바가지를 우물 바닥까지 내려본다. 길어올린 바가지 속에 물이 들어있지 않아도 우물이 말랐다는 것을 확인 하였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우물이 말랐으니 헛수고하지 말라는 말에 포기하기 보다 직접 들여다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겪어가는 아이들에게 묵묵한 응원을 보낸다.

숱하게 그릇된 판단을 한다. 나는 사랑에 마지 않는 그녀에게 화를 내고, 그녀는 내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부탁 비슷한 그런것을 한다. 그러면 나는 또 그녀에게 화를 낸다. 아차! 보다 먼저 날아드는 말은 “엄마는 혼을 낼 줄 모르고 화만 내!”라는 직언이다. 정곡은 찔렸지만 내심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맹목적인 사과나 용서보다 무엇을 엎질렀는지 알아차리고 내가 받아야 할 것은 훈육이 아니라 길을 함께 걸어가주는 것이라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주었다는 안도가 든다. #나는언니가좋아요 의 이야기에서 내가 되려 위안을 받았던 것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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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잠에게
박새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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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마침표를 향하기 보단 과정에서 맴돌다 끝을 보지 못하는 내가 끝장을 내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잠과 밥이다. 평소에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순환하는 것이 기본값이지만 몸이 축나거나 머리 속이 복잡하다 싶으면 일단 마구 먹고 닥치는대로 누워버린다. 오죽했으면 호수가 “엄마! 얼른 조금 자, 그래야 다시 착한 엄마로 돌아오지!!!” 라고 말하며 온수매트 전원을 켜 줄 정도다. 그런 내게도 잠이 거리두기 하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엔 밤이 어찌나 긴지 아무리 용을 써도 눈꺼풀이 나풀거린다.

점점 아킬레스건이 저릿하고 머리는 둔해진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잡아 당기는 듯 몸은 자꾸만 자꾸만 땅으로 꺼지는데 잠에 들지 않는 그 불쾌한 기분. 잠을 되찾아오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해보는 사투의 시간. 잠에 들고자 하는 의지와 대립하는 끈 떨어진 생각들에 휴즈를 꺼보려 애를 쓴다. 불면과 수면 사이 참으로 고되고 지난한 과정을 재기발랄한 재치로 승화시킨 #오늘의잠에게 을 보며, 해가 뜨고지고, 달이 뜨고 지듯 숨 쉬는 모든 것들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있다면 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잠에 들지 못하는 자의 모습을 깨알같이 살뜰하게 싹싹 쓸어담아 묘사하면서도, 불면이란 소재를 마치 문 하나를 통과하면 펼쳐지는 신비의 세계인듯 그려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모두의 잠자리를 편히 봐 준 ‘잠의 정령’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잠. 어슴푸레 고요하게 내려 앉는 밤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며, 수면하는 동안 혹은 수면에 이르는 과정 안에 다양한 요소를 규칙과 불규칙을 넘나 들며 그려낸 #오늘의잠에게 를 누구도 아닌 나에게 선물하며 “오늘도 너가 희망하는 꿈을 꾸길” 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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