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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빙허각 ㅣ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읽고 쓰는 사람인 내가 좋다. 여러모로 남들에게 읽히기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써야 한다는 중압감이, 쓰면서 누리는 즐거움을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앞선 두려움 때문이다. 호수의 글쓰기에 관여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적당한 무게감을 넘어서 그때부터 나를 들여다보는 글보다 유려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글쓰기에 가까워질텐데 그것은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 젊고 어릴 때에는 예쁘게 쓰는 것이 즐거워서 썼다. 가지런히 적힌 나의 손글씨, 빼곡하게 채워진 다이어리와 내 멋에 취해 남겨둔 기록들이 재미있었다. 요리조리 필체를 바꿔가며 써내려간 호수의 글자들이 귀엽다. 어디서 배웠는지 하루는 둥글 납작했다가 하루는 휘갈겨 쓰고 하루는 궁서체를 흉내낸다. 마치 내가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알아내면 그 단어를 문장에 녹여내고 싶은 마음에 요리조리 써보는 것과 비슷하다.
#이웃집빙허각 은 여성 최초 실학자 빙허각 선생과 가난한 양반의 딸 ‘덕주’가 훗날 조선에서 유일한 여성 실학자로 불리는 ‘빙허각’과 함께 최초의 한글 실용 백과사전 『규합총서』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역사동화다. 실학의 사전적 의미처럼 그들은 독자 관점의 실용서를 펴내기 위해 치열하게 번뇌한다. 빙허각 선생의 단단함과 덕주의 유연함이 상쇄하고 절충되는 과정을 통해 쌓아가는 이야기의 구조 안에서 역사 속 여성에 목소리가 초석이 되었기에 현재 여성의 목소리와 의견이 수렴되고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하지만 당연시 하지 않아야 하는 귀중함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나 역시 바람직한 여성의 모습을 만들어두고 그 틀 안에서 갇혀 있거나 아이를 가두려 한 적은 없는지 상기시켜본다.
또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이 있다면, (어쩌면 개인적 관심사와도 연결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빙허각 선생과 덕주의 만남은 세대를 허무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덕주의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만드는 소그룹 친구들이 있듯, 빙허각 선생과 덕주 그리고 도령은 작은 공동체를 꾸린다. 노인과 소녀가 성역없이 이어지기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보니 두 여인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 보게 된다. 시대적 배경은 물론이고 나이와 신분 모두 수직적일 수 있는 요소들 갖추고 있음에도 두 여인은 대등하고 수평적 관계를 이어간다. 글공부를 할 때는 완벽한 조타수가 되어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가는 길을 밝혀주는 횃불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빙허각 선생이 있었기에, 덕주에게도 힘이 실린 것처럼 그들의 우정도 완벽히 성립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역사동화 라는 장르를 넘어 여성들이 어떻게 세계를 구축해왔는지 들려주며 여성인 우리가 정체되지 않을 동기로 다가온다. 오늘도 깨어있고 내일도 깨어서 여성의 몫과 한 사람의 몫을 다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보는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