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
김개미 지음, 이수연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느때와 같은 날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또 같이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에코의 크레이트 위로 양동이로 부은듯 물이 덩어리를 지어 떨어졌다. 윗 세대와 관리사무소가 다투는 와중에도 곰팡이는 번져나갔다. 온갖 사람들이 우리집을 들락거렸다. 벽지가 뜯긴 채 아사리판 같은 집에서 잠에 들어야 했다. 도배만 하면 이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도배가 시작 되던 날, 간밤에 차가 긁혀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긁힘의 정도가 앞 휀다 부터 뒷 휀다 까지. 그러니까 차를 앞부터 뒤까지 뾰족한 것으로 긁고 간 흔적이었다. 고의로 나의 차를 겨냥한 것이 아니기만을 바랐다. 친구는 내게 액막이 명태 악세사리를 선물했다. 그래. 액땜했다 치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안도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심이었다. 그렇게 한달이 흘렀다. 이번엔 호수가 아팠다. 폐렴이라고 했다. 호수는 열흘간 병원에 있었다. 퇴원하고도 일상으로 복귀가 어려워 꽤 오랜기간 통원치료를 했다. 병원을 오가며 장마철이 지나갔다.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어느 날, 아빠의 허리가 부러져 입원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 다음날에는 남편의 셋째 매형이 소천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장례와 병문안을 마치고 집 돌아와 휴- 날숨을 내뱉는데, “골절이 아니라 척추 전이암이고 시작은 폐암이란다....” 엄마의 울먹임과 떨림이 휴대폰을 뚫고 전해졌다. 그날부터 나는 따님이 아니라 보호자님이 되었고 아빠와 생사를 놓고 실랑이 해야했다. 그 과정에 우린 에코와 안녕할 수 밖에 없었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이 날마다 나를 괴롭게 짓눌렀다.

평화로웠던 저녁, 벽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내 불운의 시작의 신호탄일거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몇달간 슬픔, 불안, 그리움이란 통증 속에 있었다. #많은사람들이바다로가 라는 그림책은 부지하는 나의 삶을 반영하는 이야기가 되어 다가왔다. 이수연 작가의 그림은 낙담하지 않으려 마음을 일으켜 세우면 또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나의 매일처럼 느껴졌고, 김개미 작가의 글은 안주하는 태도로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며 <남 일 같지 않다>가 흘러가는 말이 아니라 머무는 말이 되어 담기게 한다. 삶이 가변적이고 유연할 때 방랑할 수 있다. 그럴 때 하는 방랑은 낭만이지만, 타의에 의해 부유하는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과 평행으로 걷고 있다는 것은 지축이 흔들리는 불안이다.

김개미 작가는 ‘표면적으로는 난민이야기로 읽혀질 이 이야기가 각자의 삶의 파도와 바다를 건너는 보통의 개인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인스타 라이브 중) 내면의 근간이 흔들려, 폭풍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사투하고 있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내 집을 갖는 것을 목표가 되어 달리는 사회가 된 것에는 ‘터전’ ‘터’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있었을거란 생각도 해본다. 오늘 조간에서도 만난 ‘핵’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덜컥 무너진다. 안전하게 포근한 잠자리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닐지도 생각하면 마음이 까끌거리고 따갑다. 오늘도 터전을 잃고 표류하고 있을 인류를 위해 나의 시간에 한 귀퉁을 내어 기도해본다. 부디 닿기를 #문학동네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