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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너머 한 시간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화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대 작가 헤르만 헤세의 명작 《데미안》을 탄생시킨 산문집이 있다. 9편의 산문을 엮은 《자정 너머 한 시간》. 헤르만 헤세의 깊은 성찰과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무명 시절의 헤르만 헤세의 글은 어떠했을까? 궁금한 독자라면 호기심을 저버리기 힘든 책 《자정 너머 한 시간》. 몽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쓴 아름다움과 고독에 대한 사색의 심연으로 안내한다.
당초 헤르만 헤세는 시공간의 비밀스러운 어딘가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산문집의 원래 제목을 '자정 너머의 일 마일'이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표현이 한스 작스의 시에 나오는 게으른 사람들이 놀고먹으며 살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을 의미하는 '크리스마스 너머 삼 마일'을 연상시켜서 '자정 너머 한 시간'으로 변경했다는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작별이란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는 예술이죠. 당신이 언젠가 돌아와 빛을 얻어 갈 걸 나는 알아요. 언젠가 당신에게 더 이상 노가 필요 없을 때.
자정 너머 한 시간 中 <섬 꿈> p.48
자네는 행복이라는 보물을 호두 껍데기 속에서 찾고 있어. 하지만 아름다움과 행복은 우리보다 부유하고, 수많은 길을 가졌으며, 모든 나무에 열매를 맺지. 사랑 없는 부, 혹은 아름다움 없는 환락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가장 탐나는 것이란 내가 보기에는 어쩌면 이것 같네. 가장 고귀한 혈통과 고상한 마음씨의 소유자면서 사랑에 빠져 자신의 권리를 벗어던지는 여인. 베풀면서 부탁하는 여인 말이지.
<왕의 축제> 中 P.79
'행복이라는 보물을 호두 껍데기 속에서 찾고 있다'는 헤세의 문장은 현시대에 강조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도 궤를 같이 한다.외적 화려함은 내면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권력을 지닌 '왕의 축제'를 통해 그려낸 것을 보면,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에서 '고독의 시간'은 당연한 수순이며, 자신의 구원자는 '자신'이라는 사실을 담담하면서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게 아닐까.
헤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은 자신의 고독을 마주하고 단단한 마음을 지니며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었던 듯싶다.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는 헤세가 창조한 아름다움의 섬을 만나고 싶은 문학소녀, 문학 소년들은 한 번 펼쳐 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