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계약 을유세계문학전집 13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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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 문화사에서 이번에 출간된 오노레 드 발자크의 《결혼 계약》에는 『결혼 계약』과  『금치산』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발자크의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시대상을 잘 그려낸다. 프랑스 혁명 이후 1820년 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결혼 계약』 은 부유한 귀족 가문의 폴 드 마네르빌 백작과 파산을 앞둔 에방젤리스타 양이 결혼하기에 앞서 지참금을 두고 공증인들과 협상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결혼이란 가장 어리석은 사회적 자기희생이라네. 자식들만 그 혜택을 받지. 그 자식들은 자기가 부리는 말들이 우리 무덤 위에 핀 꽃을 뜯어먹을 때가 되어서야 그 희생의 가치를 깨닫게 되거든.

결혼 계약 中 17

결혼하려는 두 사람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거짓이고 기만이다. 하지만 결코 악의가 있어서도 아니고, 고의로 그러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각자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한다. 그들은 각자 누가 더 평판이 좋을지 서로 경쟁하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훗날 그들은 자신의 판단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날씨가 그렇듯이, 실제 삶에서는 태양이 빛나면서 들판에 환희가 넘치는 날보다 자연을 우중충하게 만드는 흐리고 음울한 순간들이 더 많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맑은 날만 본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인생 자체가 불행한 것은  결혼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을 주변에서 벌어진 일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 계약 中 45

폴의 공증인 마티아스는 폴의 결혼 상대가 평생 사치스러운 삶을 살다가 파산을 앞둔 세상 물정 모르는 아름다운 여인임을 간파한다. 심지어 그녀의 장모는  예고된 파산을 숨기고, 그녀의 공증인은 마치 폴과 대등한 지참금을 보유한 동등한 결혼임을 강조하는데, 우유부단한 폴과 달리 마티아스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머잖아 파산할 것이 뻔한 결혼을 차마 막지 못한 마티아스는 그들에 맞서 겉으로는 에방젤리스타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폴의 파산을 막아줄 묘안을 낸다. 그러나 잠시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다가 패배감을 맛본 장모는 끝내 폴의 모든 것을 빼앗는 시나리오를 짜는데... 



사랑에 눈먼 바보 역할에 충실한 폴, 미모를 앞세워 남자의 사랑을 무기 삼아 돈을 챙기는 여인. 발자크는 이번 작품에서도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 시공간을 불문하고 만날 수 있는 주인공들을 내세워 인간의 순정과 민낯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19세기 파리의 결혼 제도를 보면서 왜 결혼을 인륜지대사의 사업이라고 칭하는지 실감이 난다. 어찌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계산적인 것도 같고, 순진한 것도 같다. 한편으로는 폴처럼 사랑에 올인할 남자가 별로 없는 지금 같은 시대에는 좀처럼 만날 수 없으니 말이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결혼 계약』과  『금치산』 은 인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돈과 법'에 대해 다룬다. 특히 공증인과 판사의 전문적인 발언들에서 발자크의 법대 출신의 면모가 돋보였다. 시대상을 녹이는 작가답게 '망명 귀족 보상법'등 당대 사회적 문제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결혼 계약》  역시 사교계와 매혹적인 여인이 빠지지 않는다. 유행에 민감한 여자와 권력을 추구하는 남자는 서로 비슷한 사람이라며 사교계의 삶을 영위하는 여인들은 머리로만 여자일 뿐, 마치 전쟁터의 장군과 같다는 발자크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결혼'과 '사랑'에 대한 그의 세계관이 잘 녹여냈다. 



발자크의 작품은 고전문학임에도 시대상을 엿보는 재미와 그의 탁월한 필체는 남은 책장이 아까워질 정도다. 그래서 내가 고전문학을 읽고 싶지만, 어렵다고 느끼는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작가 중 하나가 오노레 드 발자크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을 재밌게 읽은 독자라면, 《결혼 계약》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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