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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스트리트
제니 잭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7월
평점 :
뉴욕 상위 1%의 화려한 삶을 엿본다는 것만으로도 재미는 보장된 소설 《파인애플 스트리트》. 《로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담당했던 편집자 제니 잭슨의 데뷔 소설이다.
《파인애플 스트리트》는 부동산으로 크게 성공한 스톡턴가의 장남 코드와 결혼하며 뉴욕 파인애플 스트리트의 대저택에 입성한 샤샤, 한국계 이민자 금융인 남편과 결혼하며 유산보다 사랑을 선택한 올케 달리,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철부지 막내 시누이 조지애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만의 리그 그리고 뉴욕 상위 1퍼센트에 부는 변화의 흐름을 재밌게 풀어냈다. 베테랑 편집자답게 세 명의 화자를 오가면서도 초점을 잃지 않는 안정적인 전개는 물론이고 심리 묘사가 탁월해 몰입도를 높였다.
샤샤가 뚫고 들어갈 수 없다 느낀 폐쇄 회로와 같은 가족 스톡턴 가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자본주의에 길들여지고, 한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고 싶어 하는 완벽주의자들이다. 똘똘 뭉치는 결속력이 강한 반면에 가족에게도 자신의 실수를 털어놓는 걸 극도로 꺼려 한다. 하지만 정작 가족이 자신에게 고통을 숨기면 참지 못하는 모순을 지니기도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스톡턴 가의 삶은 아니꼬운 시선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속물적인 근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를 상속받은 뉴욕 상위 1퍼센트 가문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비행이 아니면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고, 웬만해서 집을 개조하지도 않고 차도 폐차 지경에 이를 때까지 타는 알뜰한 면이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자수성가 부자들의 삶과도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좌절을 모르고 살아온 둘째 달리가 이민자 남편의 실직으로 처음 인생의 고배를 마시고, 철부지 막내 조지애나가 떳떳하지 못한 애인과의 성장기는 드라마로 나와도 재밌게 볼 법한 소재다.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오며 지금껏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던 온실 속의 화초들이 사랑과 세상을 경험하며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아를 찾아 온실 속에서 나와 성장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결국, 인간은 성공, 돈의 유무를 떠나 진정한 사랑을 만나야 비로소 성장하는 존재가 아닐까.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밤, 시원한 방에서 읽기 좋은 소설로
여름휴가 시즌 가볍게 읽을 소설책을 찾는다면 《파인애플 스트리트》 일독을 권한다.
"파인애플이 환영과 환대의 상징이라는 거 알아?"
"옛날에 뱃사람들이 파인애플을 가져와서 집 앞에 뒀다지?"
"맞아. 하지만 사실은 다른 이야기랑 조금 섞인 거야. 콜럼버스가 브라질에서 파인애플을 처음 보고 스페인 왕한테 바치려고 유럽에 하나 가져왔대. 그러니까 최고 엘리트층을 위한 특급 과일이었던 거지. 부자들만 가질 수 있는, 신분의 상징. 우리는 파인애플을 별스러운 과일로 생각하지만, 실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이야."
파인애플 스트리트, p.283
달리는 돈을 가진 사람들의 한 가지 성향을 알아챘다. 그들은 대단한 결속력으로 똘똘 뭉친다.
타고나기를 천박하거나 물질주의자거나 속물이라서가 아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돈이 그들의 인생에 끼치는 영향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중략)
부자들끼리 결속이 잘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입에 올리기 싫은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할지 모른다는 은밀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들의 주말 별장, 좋은 술ㄹ, 큰 아파트, 파티, 인턴직, 벽장, 그리고 돈을 이용해먹으려는 인간들이 두려운 것이다.
(중략)
큰 재산을 나눠 쓰는 것과 이용당하는 것은 다르고,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가끔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나를 좋아하지만 내 신용카드로 재미를 볼 마음은 없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편이 어떤 면에서는 더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