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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천재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의 양자역학의 발견을 시작으로 매니악 컴퓨터를 발명한 존 폰 노이만에 이어 AI에게 첫 패배를 안긴 바둑 기사 이세돌까지 《매니악》은 격변하는 과학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던 천재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매니악 MANIAC 미치광이라는 뜻으로
모든 것을 수학화하고 싶었던 존 폰 노이만이 인간 사고의 모든 영역을 변혁하고 무한한 계산의 힘을
세상에 풀어 과학의 목덜미를 움켜쥐겠다는 꿈으로 만든 기계. 일명, 수학 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
(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rgrator and Computer)
원자폭탄 창조로 물리학자들은 죄악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앎은 도무지 잃을 수 없는 것이다.
오펜하이머
물리학자들이 원자폭탄으로 죄를 알았다면, 수소폭탄으로 지옥에 눈을 떴다는 저자의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유럽의 벨 에포크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나치의 탄압에 미국으로 건너온 수많은 천재 물리학자들이 발명한 가장 독창적인 물건과 가장 파괴적인 물건이 정확히 동시에 탄생했음에 주목하며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이 소름 끼친다 회고한다.
컴퓨터의 운명은 애초부터 열 핵무기와 단단히 얽혀 있었다. 폭탄 제조 경쟁은 컴퓨터에 대한 조니의 열망으로 더욱 가속화되었고, 반대로 매니악을 만들려는 노력은 핵무기 경쟁으로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게나 소름 끼친다. (중략) 우주를 정복하고 생물학과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첨단 기술 세상의 많은 부분이 단 한 사람의 편집증적 집착으로 인해, 또 수소폭탄의 실현 가능성을 계산하느라 개발된 전자 컴퓨터로 인해 추진력을 얻었다.
벵하민 라바투트, 매니악, p.207
《매니악》은 수학과 과학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에게 가장 위협적인 엄청난 연구 결과의 산물을 만들어낸 것은 과학을 둘러싼 순수한 짜릿함에서 비롯된 '천재들의 광기'였다는 사실을 거듭 보여준다.
벵하민 라바투트는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3연패를 당하고도 만 분의 일의 확률인 '신의 한 수'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던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하며 소설의 말미를 흥미진진하게 장식했다.
개인적으로 1부 보다 오펜하이머와 폰 노이만의 이야기를 다룬 2부가 더 재밌었고, 외국 작가의 소설에 등장한 '이세돌 기사'가 3부에 등장하며 점점 더 재밌었다.
인간의 학습 능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AI의 학습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진정 '미래는 AI의 것일까?'
인생은 게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변수가 다분하다. AI 시대의 서막을 알린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로 대단원의 마지막을 내린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 이기심과 광기 어린 집착을 내려놓고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를 무너뜨린 '신의 한 수'처럼 인간의 독창성을 발휘하는 '놀이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란 게 아닐까.
과학의 지성을 향유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을 목도했던 독자라면,
《매니악》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