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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뤼미나시옹 - 페르낭 레제 에디션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지음, 페르낭 레제 그림, 신옥근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평점 :
랭보 탄생 170주년을 맞아 출간된 천재 시인 랭보의 미완성 산문 시집 《일뤼미나시옹》은 42편의 시와 페르날 레제의 회화 20점으로 구성되었다.
37살에 요절한 랭보의 행보는 범상치 않다. 불과 16세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하려고 가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18세에 10살 연상이자 아내가 있는 베를렌과 무절제한 생활을 하며 보헤미안처럼 돌아다니며 불륜 관계로 발전한다. 19세에는 베를린과 다투고 이별을 고했다가 총에 맞고 위협을 느낀다. 결국 베를린은 총기 난사와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갇히면서 둘의 사이는 끝난다. 「고아들의 새해 선물」로 등단한 랭보는 불과 20여 년 정도의 작품 활동 기간에 불운의 천재 작가라는 아성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내 지혜는 혼돈만큼이나 무시당했지.
당신들을 기다리는 놀라움에 비하면,
나의 허무란 무엇인가 말인가?
-<삶들> 中
일뤼미나시옹에 소개된 랭보의 시는 회의주의와 허무주의가 뒤섞여 다소 난해하다. 아사신이 등장하고 정령이란 표현에서 드라마 아사달 연대기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정작 랭보는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고 하니 그의 작품에 그의 혼란스러운 세계관이 잘 녹아있는 것 같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내내 무너졌던 야망을 그녀로 인해 내가 너그럽게 용서한다는 것이, ㅡ잘 먹고 잘 사는 결말이 지난날 가난의 세월을 배상한다는 것이, ㅡ 어느 날 성공하여 치명적인 미숙함의 치욕을 깔고 누워서도 우리가 편히 잠잘 수 있다는 것이,
(오 종려나무여! 다이아몬드여! ㅡ 어떤 식이든, 어디서든 ㅡ 모든 기쁨과 영광보다 더 고귀한! ㅡ 사랑이여, 힘이여! ㅡ 악마든, 신이든 ㅡ 나라는, 이 존재의 청춘이여!)
-<불안>中
위의 <불안>이란 작품은 산문에서 음률이 느껴지게 하는 은유와 대비를 통해 고통스러운 청춘의 나날의 절규를 극대화한다.
《일뤼미나시옹》은 불안과 열정이 담긴 랭보의 청춘을 만나볼 수 있다. 랭보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은유가 가득하다. 그가 부여한 의미를 다 해석하지 못하기에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독자들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으니 함께 읽으면 또 다른 재미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신화와 기독교에 대해 해박할수록 해석의 깊이도 다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