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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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그네 시리즈'라는 타이틀 하나로 충분한 책 《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의 황당하지만 명쾌한 5가지 처방전으로 잠시 숨통을 틔어 본다.

 

《라디오 체조》는 다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해설자」 '시청률 압박에 시달리는 프로듀서'

「라디오 체조」 '분노를 삭히다 과호흡 지경에 이른 가장'

「어쩌다 억만장자」 주식으로 벼락부자가 된 데이 트레이더

「피아노 레슨」 광장공포증으로 고통받는 피아니스트

「퍼레이드」 사회불안장애에 시달리는 대학생과 중학생

 

첫 번째 수록된 「해설자」부터 17년 전의 키득거리며 「공중그네」를 읽던 그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뉴스쇼에 스트라이프 양복과 빨간 나비넥타이를 입고 멋 내는 발상이나, 문진 없이 코로나 백신을 놓는 장면은 가히 이라부답다는 말과 함께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코로나 재난 상태에 대해 뉴스쇼 해설자로 매스컴에 데뷔한 이라부.

 

코로나를 좀비에 비유하는가 하면 정제되지 않은 그의 언사로 시청자 항의 전화가 쇄도했음에도 마유미 인기에 힘입은 '높은 시청률' 덕분에 스튜디오 생방송까지 하기에 이른다.

 

"애당초 인류는 서로 모이게 돼 있으니까 -. 멋 내고 출근하거나 퇴근길에 동료와 한잔하거나, 그런 즐거움 없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으니까-. 감염증과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지." p. 55

 

"진짜 무서우면 집에 얌전히 있겠지. 밖으로 나다니는 건 리스크와 자유를 저울질해 보고 자유를 선택한 거니까." p.66

 

오쿠다 히데오의 닥터 이라부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라부의 기괴한 처방이 정곡을 찌른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처음으로 하늘 문까지 막히는 상황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택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며, 출근하는 이유를 누군가와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는 그의 해석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회사에서 가장 힘든 이유가 사람 때문이라지만, 또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출근하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어쩌다 억만장자」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데이 트레이더가 되어 주식 시장이 열리는 시간에 컴퓨터 앞에 없으면 불안할 정도로 중독되어 버린 그의 삶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인간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함께할 누군가가 있어야 인생이 의미 있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아마도 저자가 물질 만능주의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공중그네 시리즈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공중 그네』를 읽다가 이라부의 엉뚱한 발상에 키득거려본 경험이 있다면,

《라디오 체조》 역시 『공중 그네』, 『인 더 풀』 만큼 유쾌하고 푹 빠져들 수 있는 책이었다.

 

오쿠다 히데오는 틀에 박힌 루틴을 좋아하지 않아 히트작을 버리고 이라부를 봉인해 버렸었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이라부라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우리는 다시 이라부와 마유미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인생에는 양면성이 있듯,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이라부와 마유미처럼 독특하게 까지는 아닐지라도 긴장을 풀고 힘을 빼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위트 넘치게 보여준다. 이라부와 마유미 콤비의 업그레이드는 덤이니 즐겨보시기를^^

 

인간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는,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 갓난아기 같은 이라부.

괴짜 같으면서도 읽고 있으면 힐링 되는 이라부의 비타민 처방은 현대인에게 주기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오쿠다 히데오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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