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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ㅣ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평점 :
엄마를 떠나보내고 더 춥게만 느껴지는 겨울, 조해진 작가는 《겨울을 지나가다》를 통해 동지에서 대한을 거쳐 우수로 넘어가는 겨울의 지난한 시간을 따스한 온기로 감싸 안으며 위로를 건넨다.
시간이 담긴 그릇…….
잠든 엄마를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의 몸은 시간이 담긴 그릇 같다고.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무언가 애잔하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예감과 함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사느라 엄마는 뒷 전이던 나날들을 보내던 주인공 정연. 엄마가 가고 싶다던 북유럽이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췌장암 선고를 받고 되레 엄마한테 화를 내고 만다. 엄마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집에서 엄마의 온기를 이어가고 싶은 정연은 엄마의 반려견과 살아 나간다.
어떤 나이 든 고아가 된다는 건
무섭도록 외로운 일이리라.
조해진, 겨울이 지나가다, p.46
엄마에게는 애장품이던 금목걸이라든지 팔찌를 하고 산책을 나간 적도 있었다.
내 몸에서는 엄마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보이지도 않았고 만져지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엄마에게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고,
때로는 눈앞에 엄마가 있다는 듯 허공에 대고 어리광을 부리고도 싶었다.
조해진, 겨울이 지나가다, p.75
눈물을 예고할 법한 스토리를 담담하고 짧은 호흡으로 마무리하며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특히 세상을 떠난 엄마의 유품을 사용하면서 엄마의 숨결을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관계 '엄마와 딸'. '모든 건 잊힌다고, 세상에 잊히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엄마의 위로에 무릎을 베고 잠든 주인공처럼, 힘든 날 엄마의 포근한 품에 안겨 위로받던 때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함께할 수 있을 때, 사랑하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추억을 쌓는 것이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최선임을 다시금 느낀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슬픔의 계절을 겪을 때, 혼자라고 생각될지라도 포근하게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건네는 따스한 위로.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조해진, 겨울이 지나가다, p.132
추운 겨울날, 이불 안에서 읽기 좋은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
엄마와 데이트하고 싶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