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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인간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8월
평점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라는 부제가 마음을 사로잡은 책 《환승 인간》은 환승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에서 오롯이 나를 만끽하며 살아가자 이야기하는 듯 매력 있는 에세이다.
살아있을 때 재미있으면 좋으니까
'여러 이름'을 뒤집어쓰고
'여러 존재'로 환승하며 살아봐야지
환승하는 삶.
환승할 수밖에 없는 삶.
결국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나’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한정현, 환승 인간, p.69
사랑과 우정, 행복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불안이 만연한 시대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아가기보다 다양성으로 풍부한 경험을 하는 동시에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드는 삶을 추구한다. '이름이 많을수록 숨쉬기 좋다며 '다다이숨'을 내세우는 저자의 세계관은 부캐와 N 잡러의 시대의 생존 방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환승을 거듭하며 적어도 그 안에서는 조금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라 고백하며 최후의 환승지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환승'은 때로 인생을 더 재밌고 다양하게 만드는 도구로 해석되는 것 같다.
이런저런 환승의 기록들이 쌓여 비로소 온전한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는지. 비록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나의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게 만든 산문집이었다.
행복한 시간이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균형을 잡는 것. 내 안으로의 붕괴를 이끌어내는 것. 타인의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균형으로 일어서는 것 아니었을까. 그 균형을 찾기 위해 기꺼이 붕괴되면서 말이다.
한정현, <환승 인간> 中 p. 247
개인적으로 작품 주인공에 자신을 불어넣은 작품들을 좋아한다. 픽션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는 작가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칼럼 '한정현의 영화적인 순간'을 엮은 에세이 《환승 인간》은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이 타인에 의해 무가치해지는 무언가에 대해 써보려 했다는 저자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영화 이야기에 문학 감성의 색채가 더해져 책장을 넘길수록 환승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녀의 모습에 매료당하게 된다. 그녀의 작품에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의 삶을 발견하기 때문일지도.
한정현이라는 작가를 처음 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숨어서 모든 걸 다 말할 수 있어 소설이 좋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작품 곳곳에 그녀의 삶을 녹여내 마치 십여 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껴진다.
'환승의 습성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어 낸 게 아닌가'라는 저자의 회고는 다음 소설에 또 어떤 인물로 환승해 있을지 기대감을 불어 넣는다. 동시에 예측불가한 우리의 인생사에서, 나의 다음 환승지는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필사의 노력. 변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모두가 변하기에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의 삶 속에서 나를 알아보는 누군가를 찾기,
혹은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하기.
모든 변화는 결국 우리 모두가 죽음이라는 결말을 가지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인간은 앞으로도 끝없이 찾아내지 않을까.
'어떤 변화의 격랑 속에서도 자신을 이해하고
온전히 진실되어 보일 수 있는 한 존재를 찾는 일'말이다.
한정현, <환승 인간> 中 p.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