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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평점 :
'인생에는 계절이라는 것이 있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사계절에 비유한 미즈무라 미나에의 장편소설 《어머니의 유산》은 딸의 운명은 어머니에게 달려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그건 여자의 꿈 이야기야.
너는 신데렐라야, 우리 세대의
어머니의 유산 中 p.530
'오십 대에 어머니만이 아니라
남편까지 없어지고,
금화가 지천인 큰 부자니까.
다른 여자가 들으면 화날 거야'
프랑스 유학 시절 연애하던 남자와 결혼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미쓰코는 엄마에게 인생을 휘둘린 언니와는 달리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기에 불행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오랜 병간호에 지쳐만 간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불륜까지 알게 되는데...
세상은 어느 각도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180° 달라진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꼈다. '안 좋은 일은 결코 한 번에 하나씩 오지 않고 휘몰아치는구나.'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어머니의 죽음에서 해방감을 느끼며 인생 2 막을 준비하는 미쓰코의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묘하게 응원하게 된다. 아마도 남편의 외도로 인해 받았을 충격에도 다시 자신의 살길을 모색했기 때문이었을 터.
어려서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인생이었듯, 미쓰코는 어머니의 유산은 하늘에서 내려준 대단한 선물이라 여긴다. 어머니의 유산이 있었기에 이혼해도 가난해지지 않는다란 생각에 남편과의 이별을 결심할 수 있었으니까. 여자에게 특히나 중년 여성에게 경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짚어주는 대목이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라고는 하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의 임종을 기다리다 회복하자 실망하는 딸의 모습 그리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의 임종을 바라던 미쓰코와 나쓰코가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소설 후반부에 그저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기 보다 눈앞의 엄마의 고통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여 고통스러워 자유를 갈망하는 거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담 보바리』를 중심으로 『적과 흑』, 『금색야차』 등 고전 문학이 곳곳에 등장하며 《어머니의 유산》을 다채롭게 채워간다. 미쓰코는 홀로 떠난 여행에서 외가의 비밀을 알게 되며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이혼을 결심한 그녀에게 언니는 자신의 상속분을 내어주며 그간의 미쓰코에게 내재된 마음의 앙금을 해소시킨다. 엄마와 언니와 마음으로 화해한 미쓰코는 진정한 자유를 쟁취한 게 아닐까. 어머니의 유산이 하늘의 선물이라는 저자의 해석이 적확한 비유인 것 같다.
늙어서 무거운 짐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지 않을 수 있는 딸은 행복하다. 아무리 좋은 어머니를 가져도 수많은 딸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순간쯤은 찾아오는 게 아닐까. 그것도 어머니가 늙으면 늙을수록 그런 순간은 빈번히 찾아오는 게 아닐까. (중략) 게다가 딸은 그저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은 아니다. 늙음의 끔찍함을 가까이서 직접 보는 고통 - 앞으로의 자기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정신적인 고통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게 아닐까. p.491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걸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납득하지 못하고 포기한 기억은 응어리처럼 남는다. p.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