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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클래식 라이브러리 7
다자이 오사무 지음, 신현선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5월
평점 :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인간들의 위선과 잔인함에 파멸하는 순수한 청년의 모습을 그려낸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가족들마저도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고, 단지 두려움과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여 어릿광대짓이 능수능란해졌습니다. 결국 저는 어느 사이엔가 한마디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p.17
《인간 실격》의 전반전인 분위기는 퇴폐적이면서도 다크 하다. 책으로 접하기 전에 전도연과 류준열이 출연한 드라마로 처음 접했는데, 첫 회를 보다가 중단했었다. 너무 무거운 분위기가 정서에 잘 안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받는 문학에는 이유가 있을 터라 호기심이 갔고, 드라마는 원작과 다르다는 말에 읽어보게 되었다.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다.
그 어디도 찾아갈 곳이 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p.73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종족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던 굴욕감에 여자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지만 홀로 살아남는다. 주인공 요조는 어릿광대를 자처하며 세계에 녹아들어 가려 노력하지만, 결국 마약에 중독되고 자살 기도하는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만다.
지금 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소위 '인간' 세계에서
아비규환으로 살아오면서 진리라고 믿었던 것은
단 한 가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p.120
다자이 오사무는 부잣집 아들 요조가 스스로 약자의 편에서 살아가길 자처하며 결핍과 공포의 한계에 부딪혀 인간적인 신뢰감을 상실한 채 미치 광이로 변해가는 과정에 자신을 투영시켰다.
타고난 겁쟁이인 요조는 어릿광대라는 페르소나를 지니고 살아간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아니 마셔도……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라는 마담의 회상처럼, 요조는 '인간에게는 모두 선을 행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라고 믿는 순수함을 지녔으나 술, 여자, 마약 등 세상의 음성적인 중독과는 다 연결되어 결국 폐인으로 전락하는 모순 덩어리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표면적으로 이해불가 캐릭터다. 저자는 패배의 어릿광대짓을 일삼는 요조의 모습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거침없이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당대의 사회적 불만을 자기 파괴라는 방식으로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이 어딘지 아려오는 책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조리한 세상의 굴레에서 혼란과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허무함을 그려낸 게 아닐까. 나는 어떤 페르소나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