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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부사 소방단
이케이도 준 지음,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평점 :
이케이도 준은 《변두리 로켓》 시리즈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 그리고 《하늘을 나는 타이어》까지 숨 막히는 전개와 더불어 사이다 같은 한방이 매력적인 작가다.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와 쌍벽을 이루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를 논하라면 단연 이케이도 준이 아닐까 싶다.
《하야부사 소방단》은 미스터리 소설 작가 미마 다로가 도쿄를 떠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 하야부사 마을로 이주하면서 슈퍼내추럴한 하야부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적한 시골 하야부사의 전원 풍경을 벗 삼아 글 쓰며 조용히 살아가려던 다로는 '하야부사 소방단' 단원 제안을 수락하면서 도쿄와는 다른 시골의 밀접한 인간관계에 휘말리게 된다.
다로는 하야부사 소방단 입단식 도중 발생한 화재사건 현장에 투입되며 단순 화재가 아닌 연쇄 방화 사건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야부사 마을에 연이은 3번의 화재 이후, 얼마 안 되어 실종된 마을 주민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다로는 작가의 본능으로 하야부사 마을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데...
이케이도 준의 신작 《하야부사 소방단》은 소설의 화자가 미스터리 소설 작가라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인생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듯, 전원생활을 희망하며 하야부사에 정착하려던 미마 다로의 바람과는 달리, 하야부사 소방단에 입단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속 사정을 알게 되고, 베일에 싸인 사건을 한 겹씩 벗겨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700페이지 가량의 책이 두껍게 느껴지지 않는다.
'경계와 위험'이라는 꽃말을 지닌 만병초의 메타포가 암시하듯, 평화로워 보이던 하야부사 이면에는 신흥 종교단체 '오르비스 테라에 기사단'이 암암리에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교의를 위해서는 신자들의 목숨마저 아무렇지 않게 빼앗는 무시무시한 집단이 '태양광 패널'을 수단 삼아 하야부사 땅을 매집하고, 흡사 종교전쟁처럼 하야부사를 지탱하는 시주 가문들에 무력행사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다로는 하야부사 마을과 오르비스 테라에 기사단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촘촘한 얼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간다.
특히 미스터리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는 인물을 작가의 시선으로 차분히 '사람의 됨됨이'를 간파하는 다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투영한 듯 미스터리 작가다운 면모가 돋보였다. 다로의 시선을 통해 사건의 전 모를 밝히는 과정에서 작가는 어떤 시선으로 사람과 사건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이케이도 준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다.
형태가 있는 것에 실체는 없고, 실체가 없는 것에 형태가 있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로도 그중 한 명이다.
형태가 있기 때문에 실체이고, 그 실체는 형태이며,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다.
하야부사 소방단, 이케이도 준, p.256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일을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소설은 '사람'을 쓰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쓰는 작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방의 사람 됨됨이를 파악하려는 습성이 있다. 일부러 그러든 아니든 간에, 작가에게는 그런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하야부사 소방단, 이케이도 준, p.408
지금껏 이케이도 준의 책을 읽고 실망한 적은 없었다. 보통 직장인들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사이다 같은 통쾌함에 그의 책에 열광해왔던 터라 갑자기 신흥 종교가 튀어나와 의아하긴 했으나, 사람의 연약한 심리를 이용하는 완악한 무리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특정 집단 이기주의를 주민 연대로 이겨내면서 인간은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그리고 인간 연대의 힘에 대해 따뜻하게 그려낸다. 이 과정 안에 또 다른 스토리는 직접 읽으며 감동과 재미를 느껴보시길 추천한다.
《하야부사 소방단》 올해 일본에 드라마로 방영된다고 하니 일드 즐겨 보시는 분들은 드라마로 만나기 전에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이케이도 준의 팬은 물론이고, 미스터리 소설 애독자라면 잠 못 드는 여름밤 펼쳐들기 좋을 책이다.
아직까지 그의 책을 접한 적이 없다면 올 여름 쌓아놓고 독파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