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클래식 라이브러리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목승숙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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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클래식 라이브러리의 다섯 번째 도서는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에 빠지지 않는 SAT 추천도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으로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 변신

  • 학술원 보고

  • 단식 예술가

프란츠 카프카의 책을 현대인이 끊임없이 찾는 이유는, 출구 없는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불안을 초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섬세한 심리묘사로 그려내 현실감을 높인다. 첫 번째 수록된 단편 <굴>은 초반에 책장이 잘 안 넘어갔다. 자신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현실에 안주하다가 작은 위협에도 침범당할 수 있어 불안해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함이 없었고...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불안이 헛됨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내 굴에서 가장 멋진 점은 고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고요함은 믿을 게 못 된다. 어느 날 갑자기 깨져 버릴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굴, 프란츠 카프카 p. 10

소유물이 있다는 행복감에 버릇이 잘못 들었고, 민감한 굴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굴이 손상되면 내가 다친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바로 이 점을 예상했어야 했다.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 스스로 얼마나 경솔하고 또 성과 없이 그것을 했던가 - 굴을 보호하는 것도 생각해야 했다.

굴, 프란츠 카프카 p. 47

<변신>은 가족에게 평온하고 넉넉한 쉼터를 제공하던 그레고리 잠자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하면서 그의 세계가 순식간에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비록 그레고리의 모습에 기절하고 쳐다보지 못할지언정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엄마, 화를 참지 못하는 아버지, 오빠를 걱정하고 돌보던 여동생이었으나, 생계에 뛰어들며 지친 아버지의 구박 강도는 수위가 높아지고, 동생은 그레고리를 짐승이자 골칫거리로 여기며 떠나주기를 바란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조용한 삶을 살아왔구나."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그레고리는 자신이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이렇게 멋진 집에서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데 대해 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평온함과 유복한 삶, 만족감이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면 어쩌지?

<변신> 프란츠 카프카 p.79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법. 재독하는 책이라서인지 결말을 알기에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의 회상 장면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가정을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도록 평생 돈을 벌어다 주던 일벌레 그레고리가 벌레가 되며 더 이상 가족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걱정하지만, 그레고리는 가족으로부터 전력으로 도망치기 위해 비틀거리며 기어가기도 한다. 이제 잠자 가족에게 그레고리는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라 여겨질 뿐이다.

20세기의 거장인 카프카의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진다. 자신의 설자리를 잃은 퇴직한 가장들의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평소 가장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다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식충이라 여기며 귀찮아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어지는 것 같다.

카프카는 <변신>을 그레고리의 죽음으로 마무리한다. 그의 죽음과 홀가분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가족을 상반되게 그려내며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한다.

저는 열심히 배웠습니다. 해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배우게 되는 법이지요. 출구를 원하면 배우게 됩니다. 마구 배우게 되지요. 자신을 채찍질하며 감독하고 몹시 하기 싫어하는 반항심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스스로를 혹독하게 다그칩니다.

학술원 보고, p.137

<굴>에서 나의 고요함은 한순간에 깨질 수 있는 것이며, <변신>에서는 삶의 전부였던 일과 가족, 보금자리로부터 한순간에 버려질 수 있다는 허무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는 비록 인생의 출구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끊임없이 배우면서 타인의 판단이 아닌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면 될 뿐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현재 답답한 상황에 놓여있을지라도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나를 위한 의무이자 최선이 아닐까.


그런데 내 굴에서 가장 멋진 점은 고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고요함은 믿을 게 못 된다. 어느 날 갑자기 깨져 버릴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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