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법 엄숙한 얼굴 ㅣ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평점 :
'소설, 잇다' 시리즈 두 번째 도서 《제법 엄숙한 얼굴》은 지하련의 단편과 임솔아의 에세이를 엮어 '자랑'과 '엄숙한 얼굴'에 대해 이어나간다.
#제법엄숙한얼굴
소설, 잇다' 시리즈 두 번째 도서
지하련의 단편과 임솔아의 에세이를 엮어 '자랑'과 '엄숙한 얼굴'에 대해 이어나간다.
"웃지 않으면 꽤 엄숙한 얼굴이면서도,
웃으면 퍽 순결해 보이는 것이 거반 얼굴의 특징이었다."
'소설, 잇다' 시리즈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산 두 여성 작가의 작품을 이어주는 작가정신의 시리즈로, 잊히기 쉬운 여성 작가의 작품을 리라이팅해 현대 독자에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하련은 도쿄경제전문학교에서 공부한 일제강점기의 신여성으로, 시인 임화의 아내다. 그녀는 1940년 대 활발히 작품 활동을 했으나 광복 이후 남편과 월북하면서 한국문학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에는 시대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당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체향초』 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란 '자랑'을 지닌 사나이라 일컫는다. 삼희는 "'자랑'을 가졌으니까. 생명과, 육체와, 또 훌륭한 '사나이'란 자랑을 가졌으니까."라며 태일을 흠모하는 오라버니를 볼수록 초라한 청년이라 여긴다. 한편 오라버니는 삼희의 조소적이고 방관적인 태도를 두고 '하이칼라'라며 당시 일제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위선과 모순에 대해 지적하기도 한다.
『가을』에서는 "참는단 건 자랑이 있는 사람의 일일 게고, 또 자랑이 없는 사람은 외로워서 쓸쓸할 게고 그 쓸쓸한 걸 이겨나갈 힘도 없을 게고 …… 그러니까 결국 아까 말한 그런 약점이란 어리석은 여자에겐 운명처럼 두려운 것이에요."라며 자랑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지하련의 작품들에는 여성으로서 제약이 있었던 일제강점기와 가부장적인 시대적 상황에서도 사회적인 가면을 쓸 수밖에 없던 지성인의 민낯을 그리는 동시에 비록 내면의 씁쓸함은 존재할지라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신여성의 태도가 녹아있었다.
반면에 임솔아 작가는 지하련 작가와의 교차점을 '자랑하고 으스대는 남성들'로 포커스를 두고 이어나간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자랑이 아니야. 자랑 끝에 달려 나오는 씁쓸함이지. 지식인 남성들은 자랑만 늘어놓지 않았다. 그들도 아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남자가 별로라는 것을. 그러나 자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자기 자랑을 씁쓸해하고, 그 씁쓸함도 자랑했다." 임솔아, 『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 p. 267
다른 시대에도 남성은 여전히 자랑하는 습성을 내려놓지 못했으나 그 시대의 남성답게 깨어있다며 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이 교차되는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문학이란 여성으로 살아온 나를 기다려준, 여성인 나의 편에 서준 여성의 언어다."라 고백한다.
시대와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살아가게 하는 문학의 힘이 지하련과 임솔아의 공통분모인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건강하다는 건 훌륭한 자연을 몸소 느끼고 만져보듯 즐거운 일일 겁니다."
"역시 사람은 앓지 말아야지요." p. 182
너무나도 당연한 문장인데, 과거 일제 강점기에 쓰인 소설이라서인지 괜시리 애잔한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의 기분인 걸까?
개인적으로 고전 문학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한국 고전보다 서양 고전을 더 애정 하는 편이다. 《제법 엄숙한 얼굴》을 읽으면서 내가 한국 고전을 찾아가며 읽지 않은 건, 우리네 고전 문학에는 일제강점기의 애환이 서려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의 역사이기에 한국 고전을 더 접해야겠다 다짐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잇다' 시리즈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자랑이 아니야. 자랑 끝에 달려 나오는 씁쓸함이지. 지식인 남성들은 자랑만 늘어놓지 않았다. 그들도 아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남자가 별로라는 것을. 그러나 자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자기 자랑을 씁쓸해하고, 그 씁쓸함도 자랑했다. - P2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