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본 적 없는 최장 제목의 책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은 정지돈 작가의 연작 소설집이다.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은 네 편의 단편 소설과 안은별 작가의 한편 그리고 대화록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소설이 걷는 것을 묘사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매체이기 때문이다. 시 또한 마찬가지다. 시는 걸음을 영원한 행위로 만든다. 또는 순간으로." p.9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中
독서욕을 일으키는 작가라더니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소설은 걷는 것을 묘사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움직임, 모빌리티라는 공통된 주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해 나간다.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에서 이만희의 '휴일', 루소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등의 소재를 활용해 러닝타임, 휴머니즘과 자유의지와 죽음 등 사유의 흐름대로 끊임없이 수다가 이어진다. 마치 팟캐스트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새로운 형식의 단편집이라 다소 난해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단편 『내부 순환』에서 21세기 문학이 필요한 것은, 지금 시대에 부족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방가르드, 실험 문학, 시대로부터의 탈출이라며 '말은 홀로 내버려 둬야 한다'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게 된다.
또한 소설 중 '소설이라기 보다 소설을 향해 느리게 전진하는 연속적인 메모들의 모음이었다.'라고 묘사한 미치 미치의 소설처럼 프레임에서 탈피해 새로운 장르를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 이 또한 단편 소설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정지돈 작가가 '모빌리티'라는 주제를 여러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게 자연의 이치니 시간 감각이 달라지면, 필요로 하는 욕망이 달라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라는 매체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서로 연결되는 '모빌리티'로 자리할 수 있음을 독보적으로 그려낸 것 같다.
새로운 단편을 접하고 싶다면,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