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도 언젠가 잊혀질 거야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격적인 제목이 인상적이었던 베스트셀러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작가 스미노 요루의 신작 《이 마음도 언젠가 잊혀질 거야》로 돌아왔다.

 

감정선을 섬세하게 다뤄 공감대를 형성하며 재밌다는 입소문으로 유명해져 영화로도 제작된 데뷔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처럼, 《이 마음도 언젠가 잊혀질 거야》에도 염세적이고 소극적인 몽상가 청소년 카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무료한 일상을 살아가던 카야는 어느 날 자신만의 은신처인 버스정류장에서 눈과 손톱이 빛나는 다른 세계의 소녀 치카를 만난다. 밀월을 즐기던 카야와 치카는 자신들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라 생각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실험을 시작하는데...

 

텅 빈 세계에서

텅 빈 마음을 채워가네

함께 나눈 죄의 무게만큼

사랑의 윤곽을 더듬듯이

 

일상에 스며드는 관계가 있다. 평온한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죽음에 의미를 두지 않는 카야와는 달리 전쟁 속에서 살고 있는 치카에게는 살아있는 것 자체를 가장 중요하다 여긴다. 전혀 다른 세계관을 지닌 카야와 치카의 밀월이 카야에게 잊지 못할 뜨거운 마음이었다면, 시간이 흘러 사나에와는 무미건조한 듯 순조로운 관계로 사랑은 아닐지언정 비슷한 성향의 사나에는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첫사랑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없다 여기며 살아가는 카야에게 특별한 순간도 언젠가는 잊히는 게 사람이라며 나란히 걷기를 청하는 사나에의 모습에서 함께한다는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한편, 치카라는 존재에 의미를 구하는 카야의 모습을 보며 타인의 존재에 의미를 구하는 것 자체가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치카의 존재 자체로 숨을 쉬게 한다고 느끼는 카야에게 치카와 밀월의 시간은 시시하게 느껴지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탈과도 같았을 테니까.

어쩌면 붙잡을 수 없는 존재를 갈망하는 카야의 일탈은 끊임없이 일탈을 꾀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카야에게는 치카와의 밀월의 시간이, 사나에에게는 음악이 그러했듯, 대상은 다를지언정 텅 빈 세계에서의 공허함을 끊임없이 무언가로 채우고, 무언가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간사와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이 마음도 언젠가 잊혀질 거야》는 허상을 쫓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성장통을 판타지적 전개로 로맨스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또한, 나만의 세계가 무너지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동시에 내게 특별하다고 여기던 시간도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듯, 세월의 흐름에 맞추어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행복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치카가 나를 절망에서 구해줬으니, 나도 치카를 절망에서 구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p. 234

 

아무래도 이 인생이란 것은 즐겁다거나 시시하다는 강렬한 감정을 품을 대상이 못 된다. 한때의 돌풍으로도 비유되는 감정을 품긴 해도 바람은 금방 지나가고, 남은 시간은 바람의 기억을 고마워하며 사는 여생에 불과하다. p. 310

 

나는 인생에 돌풍이 분다고 생각해. 다른 말로 바꿔도 좋아 절정기나 최고의 추억이나. 인생이란, 돌풍을 맛보고 돌풍이 떠난 후에 텅 빈 채로 그 맛을 되새기면서 여생을 보내는 거야." p.3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