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
비벌리 엔젤 지음, 정영은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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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당신을 떠나지 못하는가? 이 말에 공감된다면 펼쳐야 할 책이 있다. 《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는 정서적 학대의 진단부터 스스로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탈출하여 치유하기까지 단계별 치유 프로그램을 담아냈다.

 

자신이 정서적 학대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피해자'는 타인으로부터 입은 피해와 트라우마를 견뎌낸 강한 사람이지만, 피해자를 탓하고 비난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그 단어를 모욕적인 말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하여 학대의 심각성을 축소하지 않기 위해 생존자가 아닌 피해자라 명명했다고 한다. 물론, 학대를 극복한 이들을 생존자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학대자에게 맞서거나 학대적 관계를 끝내기 전까지는 피해자는 여전히 피해자라고 강조한다.

 

정서적 학대가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는 동시에 정서적 학대가 자존감과 자신감을 어떻게 갉아먹어 가는지 심각성을 보여준다. 또한 자신이 훨씬 나은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음을 깨닫게 하여 보이지 않는 수치심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파트너에 맞서고 관계를 유지할지 그만둘지 지속 여부를 결정하게 도와주며, 떠난 뒤에는 어떤 단계가 필요한지 로드맵을 제시한다.

 

정서적 학대는 피해자의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목표물로 삼아 공격하며, 물리적 학대의 전조증상이 되기도 한다. 정서적 학대에는 언어적 폭력, 지배, 통제, 고립, 조롱, 은밀한 정보를 이용한 협박 등이 포함된다.

 

게다가 정서적 학대는 천천히 가해지다 보니 피해자가 학대를 당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정서적 학대는 물을 한 방울씩 똑똑 떨어뜨리는 고문에 비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던 사람이 딴 사람이 되어 짜증과 비난을 일삼으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케이스마다 양상도 다르기에 분별하기도, 어디까지를 정서적 학대로 간주해야하는지 애매한 부분이다.

 

저자는 정서적 학대 가해자가 상대방의 감정과 지각을 혼란시키거나 무력화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들이라고 하니, 혹시라도 귀에 익은 표현이 있는지 살펴보며 진단해 볼 것을 권한다.

 

  • 당신이 과민 반응하는 거야

  • 당신이 헷갈린 거야. 난 그런 적 없어

  • 괜히 과장하지 마. 난 그런 사람 아냐

  • 당신이 잘못 들었네. 내가 왜 그런 말을 하겠어?

  • 당신이 잘못 기억하는 거야. 어떻게 된 건지는 내가 더 잘 알아.

  • 당신 성격이 예민한 게 내 탓은 아니잖아

  • 호들갑 좀 떨지 마

  • 내가 왜 당신을 그렇게 대해? 당신이 착각한 거야

  • 왜 또 그렇게 따지고 들어

  • 뭐 그런 일로 신경을 써?

  • 그런 생각 하지 마. 그런 기분 느낄 것 없어

 

또한 한동안 떠들썩하게 했던 아내가 공범과 함께 남편을 가스라이팅 하며 재산을 갈취하고, 끝내 계곡에서 죽음에 이르게 한 '계곡 살인 사건'처럼, 정서적 학대의 피해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이 될 수도 있다. 남녀 사이는 타인이 재단할 수 없는 관계이기에 오롯이 자신의 마음의 결단이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고 신뢰해야 할 관계가 오히려 인생을 무너뜨리고 있다면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홀로 고통 속에서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누군가라면 《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 일독을 권한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신을 지지하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용기를 내는 위로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

 

문뜩 '말로 사람을 죽인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는 남녀 사이의 정서적 학대를 주로 이야기했지만, 비단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사이에서도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통제하기 위해 언어적 폭력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부모와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지배와 통제적인 말버릇은 타인을 눈치 보는 사람으로 위축시킬 수 있음을 기억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말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겨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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