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에는 사적이면서도 치열한 소설가 23인의 작가 정신이 담겨있다.
집필에 영감을 주는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 소설가들이 글을 쓰는 창작의 공간, 소설 집필 의식 등 소설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 논하는 '소설과의 삶'을 보여준다.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는 잔잔한 여운을 주는 단편 소설 같은 에세이로 작가들의 집필 공간과 작가들이 운명처럼 소설가가 되게 된 이유 등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서재는 어떠한 모습인지 궁금해한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책을 간직하는지 서재의 모습을 보면 한 사람의 세계가 보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작가 정신 출판사의 창립을 맞아 소설에 대한 소설가의 생각이라니 너무 참신한 기획 아닌가. 등단하고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의와 타의에 의해 다른 생업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 책을 쓰지 않더라도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작가 등 소설을 애정 하는 한 사람으로 저마다 다른 모습의 소설가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이 흥미로웠다.
소설은 내게 감각과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양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함을,
그러니 그렇게 절망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경험한 누군가가 있으며
작가 또한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문자와 실재 간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며
몇 줄로 요약되는 삶과 죽음 사이에
소중한 희로애락이 내포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중략)…
공감 능력이 부족한 나를
이야기 속으로 유인해
차근차근 설득하다가 도망칠 수 없게
온몸으로 끌어안고 안심시켜 준 것은 소설뿐이었다.
정소현, 「쉽게 배운 글은 쉽게 글을 쓰지 못하게 한다」 p.120
많은 작가들이 공감한다는 이 문장은 소설가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문장이다.
'지금까지 많은 소설을 써왔지만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면
그동안 소설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처럼 막막합니다.'
최진영, 「입구도 문도 자물쇠도 비밀번호도 없는 시작」 p.187
소설은 작가의 정체성을 사수하며 누군가에게 가닿고 싶은 마음에 소설가들이 자신의 삶과 능력을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소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인내의 순간들을 견딜 수 있었을까.
나는 처음에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라는 책 제목만 보고 소설가들이 작은 인세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써 나가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었다. 그러나 마진에 대한 이야기보다 23편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쌓여가며 이들이 얼마나 문학을 사랑하고, 소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얼마나 큰지 소설은 결국 그들의 삶 자체임을 보여준다. 그들의 진정성이 녹아있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나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나 '소설을 사랑한다'라는 공통분모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소설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독서에 있어서 나름 편식하지 않는 편이지만, 독서는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미타임이기에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은 넘어선다.
작가들의 수많은 실패와 포기 끝에 완성시킨 문학 작품들 덕분에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소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작가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나에게 울림을 주는 주인공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새로운 소설을 펼쳐든다.
"소설을 쓰고 읽으면서
나는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계속하여, 꿈을 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