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노르웨이 최고의 소설로 꼽힌 노르웨이 최고의 스토리텔러 토레 렌베르그의 장편 소설 《톨락의 아내》는 칭찬 일색의 리뷰가 쏟아지는 훌륭한 작품이라 기대하며 책장을 열었다.
'입술 사이로 피가 흘렀다'라는 문장으로 《톨락의 아내》는 강렬하게 시작한다. 잉에보르그의 남편이라 불리는 톨락은 그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 속한 사람이다. 톨락은 거친 성격 때문에 주변과 어울리기도 어렵지만, 잉에보르그와는 대화를 나눈다. 모두와 잘 지내고 따뜻한 잉에보르그가 그를 사랑으로 품어준 덕분에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던 어느 날, 불청객 오도라는 아이를 데려와 키우면서 삶이 기류가 바뀐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남자일 뿐." p.115
톨락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독백이 아닐까 싶다. '잉에보르그의 남자'라고 불리던 톨락에게 아내의 죽음은 세상의 빛이 사그라진 것 과도 같다. 톨락에게는 가슴에 분노하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 내력이 대물림된다. 톨락은 자신을 닮은 오도를 미워하는 아내의 모습에 자제력을 잃게 되고, 아내의 실종과 함께 그는 황폐해진 집을 돌보지 않는다. 수년이 흐른 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기로 결단하는데...
토레 렌베르그 문학 스릴러라는 장을 연 듯, 《톨락의 아내》는 문학 작품에 스며든 서스펜스를 경험할 수 있다. 피오르드가 압권인 경이로운 자연의 상징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며 대자연 앞에 대비되는 인간의 삶은 초라하기 그지없음을 다시금 보여준다. 어둠의 상징 같은 톨락과 빛과 사랑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잉에보르그의 대비, 짧은 호흡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전개, 톨락의 불편한 사랑의 서사와 심리 묘사 그리고 죽음을 앞둔 남자의 고백은 반전은 없지만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다.
"이제 진실을 밝힐 때가 왔어.
우리의 삶을 차지했던 그 몇 초의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책장을 덮으며 비로소 첫 문장의 강렬함이 주는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입술은 사랑의 메타포이고, 피가 흐른 것은 죽음의 은유가 아니었을까. 노르웨이 문학의 거장의 작품답게 책장이 잘 넘어가 이제 북유럽 문학의 장벽도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