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야쿠마루 가쿠의 새로운 승부작이라는 소설 《어느 도망자의 고백 》은 사람을 죽인 가해자의 시선으로 흡입력 있게 전개해 나가는 소설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면서 짙은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쇼코는 여자 친구 아야코의 호출에 빗길에 음주 운전을 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할머니를 들이받고 도망친다.
이 단 한 번의 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 가정의 평온하던 일상을 뒤집어 놓는다. 앞날이 창창하던 대학생은 살인자가 되고, 세상의 온갖 지탄은 결혼을 앞둔 누나를 파혼시키고, 아버지의 명성도 일순간에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가해자의 가족도 풍비박산 났지만 갑작스레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이별한 피해자 가족의 아픔은 어찌 위로할까.
피해자 유족에게는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는 가해자의 형량, 가해자는 과연 속죄를 하고 있을지, 공분을 사는 범죄가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에서 저자가 꼭 써야 했다는 소설 《어느 도망자의 고백 》은 지루한 틈이 없이 단숨에 읽힌다. 이는 저자의 뚜렷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플롯 그리고 등장인물의 심리묘사 삼박자에 필력이 더해져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사건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범죄자, 가해자를 믿고 싶은 가해자 가족, 진정성 있는 사죄를 구하라는 변호사, 형량대로 교도소를 다녀오면 죗값은 다 치렀다고 생각하는 수감자,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는 피해자 유족의 심경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해 소설의 몰입도를 높이며 감정을 쌓아간다.
아버지가 인생을 다하는 순간에 아들을 생각하며 반면 교사하라고 마지막으로 남긴 진심이 담긴 편지는 마음을 먹먹하게 하고, 다시 한번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네가 사고를 내고 나서 나는 내내 도망만 다녔다.
부모의 책임으로부터, 너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일과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왔어. 그런 삶을 계속하는 가운데 아버지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단다.
웃지 못하게 되더구나.
그래. 계속 도망치는 한 사람은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죄를 지은 아들에게 이런 걸 바라다니, 피해자 유가족에게 죄스럽지만, 아버지로서는 언젠가 네가 진심으로 웃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p.340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의 가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위기를 모면하고자 도망가는 삶을 택한 자는 결코 용서받을 수도, 자유로울 수도 없음을 야쿠마루 가쿠는 묵직하게 그려냈다.
내가 쇼코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한편, 아내를 잃은 할아버지의 행동이 무언가 이상하다. 치매에 인플루엔자까지 생명이 위태로운 할아버지는 가해자를 만나 한을 풀고자 하는데 ... 그가 감추어둔 한은 무엇이며, 과연 한을 풀 수 있을까? 진실은 《어느 도망자의 고백 》에서 확인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