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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가 놓인 방 ㅣ 소설, 향
이승우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4월
평점 :
세계적으로 꾸준히 주목받는 작가 이승우의 <욕조가 놓인 방>은 짧은 연애소설이다. 그러나 얇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에 대한 서사로 자신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 정의한다.
"사랑에 빠진 순간 세상은 두 사람만 사는 공간이 된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 마찬가지다. 연인들은 최초의 하늘과 땅을 가진 에덴의 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만 거주하는 양 느끼고 말하고 행동한다. 연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사랑은 세상을 축소시키는 기술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의 세계는 두 사람만 존재하는 아주 좁은, 이제 막 태어난 세상이다." p.42
여행지에서 우연한 만남이라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했다. 마야의 피라미드 앞에서 뜨거웠던 첫 키스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 연인으로는 만족하기에 물 위를 걷고 싶은 남자와 물속에 잠기고 싶은 여자의 속성은 끝내 섞이지 못한다. 밀란 쿤데라가 사랑은 우연을 얹으려는 의지라 말한 것은, 우연은 그 사랑에 숙명적인 성격을 주입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우연이 거듭될수록 호기심과 명분이 생겨나 사랑의 숙명성 역시 증가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소설 속 여인의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욕조가 예사롭지는 않다. 그러나 여인의 사연을 알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은 여인은 수장을 최고의 죽음이라 여기며 매일 밤 욕조에서 물에 담근다. 이는 그녀만의 상처를 보듬는 의식인 동시에 가족의 품으로 가고 싶은 여인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물소리가 싫어 여인을 떠났으나 명분을 찾아 돌아온 남자는 여인의 흔적이 사라진 그녀의 방에서 여인의 상처를 받아들이지도 품어주지도 못한 것을 뒤늦게 깨닫고 회한에 젖어든다.
사랑이 떠난 후에야 뒤늦은 사랑에 빠져 그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빗나간 사랑은,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을 다시금 되뇌게 한다. 저자는 사랑은 오해에서 시작된다며 사랑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비록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울지라도, 사랑 앞에 명분을 찾고 행동하기 보다 서로의 마음이 닿는 시간이 맞아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랑은 요구하는 것이고, 또 복종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뇌리에 남는다. 복종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사랑이란 스치는 것이 아니라 섞이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연인만의 둘만의 시공간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자신을 비워낼 때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욕조가 놓인 방>은 짧지만 여운이 남는 연애소설로 사랑의 의미에 대해 재해석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