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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하여 ㅣ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평점 :
은행나무 세계문학 시리즈 에세의 세 번째 도서 <인간에 대하여>는 코로나 3년 차에 읽는 최초의 코로나 소설로 팬데믹 시대에 인간의 민낯을 조우하면서 바이러스는 존재하지만,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강조한다. 자연의 힘, 일상은 강하다며 어디서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말이다.
베를린 에이전시에서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도라는 배우자 로베르토와의 권태감에 브라켄이라는 시골 마을로 충동적으로 떠나면서 전개된다. 도라는 자신을 나치라 일컫는 고테라는 옆집 남자가 일상에 자꾸 들어오면서 브라켄 마을에 점점 익숙해진다.
도라는 특권 의식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중요한 일은 모두 저절로 일어나므로 안간힘을 써봐야 소용없다 여기는 수동적 콘셉트의 남동생 그리고 일에 함몰된 배우자까지 도시적인 삶을 살아가던 도시 여자 도라가 코로나로 생활 터전을 옮겨 시골 마을에 적응하면서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마주한다.
삶이란 비밀스러운 게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끝날 때까지 습관적으로 지속될 뿐이라는 거다. 계속된다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유일한 해법이고 엄청난 운명에 순응하는 유일한 기회인 거다. p.482
<인간에 대하여>를 읽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서방 국가의 분위기 등 인간 혐오에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재 우리네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저마다 '선한 사람'을 표방하고 내가 남보다 낫다는 우월감에 도취되어 살아간다. 경쟁 사회에서 자기중심적이고 소비 만능주의에 살아가던 현대인에게 사회적인 문제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해 고립된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의 이기심이 자초한 자연의 재앙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처절하게 느낀다. 저자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도라의 브라켄 적응 서사를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살아갈 것을 권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은 연민, 죽음을 앞둔 이를 돌봐주는 인류애 연대의 힘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창 재밌게 읽다가 흐름이 끊겼다는 점이다. 갑자기 맥락이 끊기고, 기시감처럼 같은 부분이 반복되는 기분이 들어 소설의 앞부분을 들춰보았더니 304페이지에서 369페이지로 건너뛴 것이다. 380여 페이지를 넘어가다가 321페이지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툭 끊겼던 흐름이 나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게 아니라 20여 페이지가 없는 파본이었음에 안도하면서 이내 다시 도라의 삶으로 돌아갔다.
<인간에 대하여>는 전염병 소설이지만 코로나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며 폐쇄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페스트>를 읽으며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듯, <인간에 대하여>는 훗날 코로나 시대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문학작품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