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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라푼젤 - 성별 반전 동화 12편
캐리 프란스만 그림, 조나단 플랙켓 글, 박혜원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여성은 아름답고 가정적이어야 하며, 남성은 잘생기고 권위적이라는 편견은 어릴 적 동화를 읽으며 세뇌되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미스터 라푼젤>은 지금껏 세대를 뛰어넘은 명불허전 동화들의 성별을 바꿔 새로운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남자 혹은 여자라는 이분법적인 아이디어가 팽배한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여성이 권력을 손에 쥔 평형 세계에서 쓰였다는 분위기를 내고자 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이름, 직위, 의류 등 성별에 따른 단어들도 수정했다.
백설공주를 각색한 백설 왕자를 예로 들면,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지?"
거울이 이렇게 대답했어요.
"나의 왕이시여.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그건 사실이지요.
하지만 백설 왕자가 당신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 백설 왕자 中-
저자는 어린 시절 등장인물의 성별을 바꿔서 동화책을 읽어주시던 아버지 덕분에 성별 고정 관념 없이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다고 한다. 자신의 딸아이가 여자아이도 힘이 천하장사일 수 있고 남자아이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녀 성별을 바꿔주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만화가 아내와 합심해서 전래동화에 적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녀와 야수'는 '미남과 야수'로, '잭과 콩나무'는 '재클린과 콩나무'로, '라푼젤'은 '미스터 라푼젤'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잠자는 숲속의 왕자'로 바뀐 12편의 동화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아리따운 얼굴에 성 밖에 나올 수 없었던 가녀린 금발머리 라푼젤은 금발 수염의 미스터 라푼젤로 등장하고, 성에 갇힌 남성을 갑옷을 입은 공주가 구출한다. 지금껏 만화에서 등장했던 가장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뮬란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스터 라푼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뮬란을 넘어선 듯 보인다. 아무래도 여성을 아름답다고 하지 않고, 잘생겼다고 묘사하며 가계를 책임지는 역할도 여성의 몫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성의 내조가 당연했던 과거와는 달리 남편이 살림하고 아내가 바깥일을 하는 가정도 종종 눈에 띄고, 여성보다 더 예쁜 꽃미남이 눈에 띄고, 보이시한 매력의 잘생긴 여성이 브라운관에 등장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숙녀는 다소곳해야 하고, 신사는 울면 안 된다고 배우며 자랐기에 남녀가 사회활동을 같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있고, 남녀가 평등하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사회적인 차별이 존재한다. 동화 속 성별 전환이라는 시도는 재미를 선사하는 동시에 다소 신선한 충격과도 같은 발상의 전환은 딸아이가 차별 없는 세상에서 편견 없이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여운이 남는다. 평소 동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각색한 동화는 은근한 매력이 있음을 다시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