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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평점 :
맨부커상 최대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얀 마텔이 15년 만에 내놓은 장편 소설<포르투갈의 높은 산>이 양장으로 돌아왔다.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총 3부로 서로 다른 이야기들 같지만 상실의 아픔을 겪은 남자들의 이야기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과 연결되어 있는 얀 마텔의 천재적인 필력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1부 '집을 잃다'
1904년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하는데, 1주일 사이에 사랑하는 여자와 아이 그리고 아버지까지 잃은 토마스가 율리시스 신부의 글에 끌려 뜻밖의 보물 십자고상을 찾아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겠다 다짐하며 숙부에게 차를 빌려 여행길에 오른다. 그는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 사내아이를 차로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를 내지만, 나도 모르게 일어난 일ㅇ에 불과하다며 갈 길을 가고, 십자고상을 마주했을 때는 예수님을 유인원일 뿐이라 모독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시련이 절반만 끝났음에 흐느끼며 "아버지, 당신이 필요하다"라며 절규한다.
2부 '집으로'
1939년 병리학자 에우제비우 로조라가 업무를 사별한 아내 마리아를 만나 예수의 기적의 의미,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담소를 나눈다. 그녀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의 핵심에는 늘 가장 무거운 죄악-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있다며 예수의 이야기도 결이 같다면서 복음서만큼 높은 도덕 수준을 보여주는 유일한 현대적 장르가 바로 저평가되는 살해 미스터리라고 이야기한다. 에우제비우 로조라는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애거사 크리스티가 맞아떨어진다는 말이 거슬리지만 미소로 침묵한다. 그녀를 붙들고 싶지만 그녀는 떠나가고, 검은 상복을 입은 마리아 도르스 파수스 카스트루라는 여인이 들어와 남편의 시체를 가져와 자신을 남편의 시신 안에 넣고 봉합해 줄 것을 부탁하는데... 시신은 이미 침팬지와 새끼 곰을 품고 있지만, 마리아는 비집고 들어가 누워 '여기가 집이야'라며 되뇐다...
3부 '집'
1981년 토론토 상원 의원 이민자 피터는 아내 클래라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을 옭아맨 사슬로 여겨지는 것들을 내던지며 뿌리를 찾아 포르투갈 높은 산으로 돌아가면서 서사가 진행된다. 갑작스러운 포르투갈행에 주변에서는 의아해하지만, 그는 비밀리에 침팬지 오도를 사서 함께 떠난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도착한 그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집을 구해 오도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아들이 찾아오고 그가 머무는 집에서 발견된 마리아의 가방 덕분에 조부의 집임을 알게 된다. 침팬지 형상의 십자고상을 발견한 즈음, 피터는 오도와 산책을 떠난 그는 높은 바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오도는 유유히 사라진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1부에서 토마스가 집을 떠나 여행길에서 사고를 낸 아이가 2부에 등장해 그의 부모 이야기로 이어지고, 3부에서는 그의 친척이 이민 갔다가 포르투갈 집에 돌아온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남자의 서로 다른 상실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써 내려간 얀마텔의 믿음, 종교관, 상실에 대처하는 인간에 대한 철학이 녹아 있었다.
"삶이란 망각을 향해 달리면서도
집의 안락함을 느끼려는 노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서글프게 인정하고 있다."p.47
얀마텔은 사랑을 잃은 우리는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상실의 아픔에 대처하는 자세가 다 다르다. 그렇지만, 그 슬픔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미지의 장소로 이끈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산이 없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믿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일 매료되어 읽었던 부분은 2부였는데 성경과 애거사 크리스티를 연계하는 얀마텔의 재치에 천재 작가라는 말밖에 안 나왔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피터의 흐느낌에 꼬옥 껴안아주며 위로하는 침팬지 오도의 따스한 포옹처럼, 상실의 아픔이라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이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