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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의 간식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평점 :
『츠바키 문구점』의 작가 오가와 이토의 신작 소설 <라이온의 간식>은 시한부 말기 암 환자들의 생의 마지막을 추억의 간식과 음식을 먹으면서 온기를 느끼는 따스한 이야기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먹고 싶은 간식은 무엇인가요?"
서른셋의 시즈쿠는 암 투병 중 시한부 선고를 받고 레몬 섬에 자리한 '라이온의 집'이라는 호스피스에 입소한다. 바다를 볼 수 있는 유일한 호스피스 라이온의 집은 관리자 마돈나를 주축으로 말기 암 환자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면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는데 주안점을 둔다. 그렇기에 규칙은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뿐. 단, 라이온의 집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 일요일의 간식 코너로 '라이온의 간식'이라는 책의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는 대목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간식 시간이 열립니다. 게스트는 한 번 더 먹고 싶은 추억의 간식을 주문할 수 있답니다. 매주 한 분의 사연을 뽑아서 그분의 추억의 간식을 충실히 재현하죠.
어떤 맛이었는지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먹었는지 되도록 구체적으로 추억을 써주시면 됩니다. 그림으로 그려주는 분도 계신답니다."
'간식은 몸에는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간식이 있어서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간식은 마음의 영양, 인생의 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이온의 집 관리자 마돈나는 맛있는 것 먹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먹으며 최대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나야 후회가 없음을 알았던 것 같다. 간식 앞에 선 누구나 어린아이가 되듯 누군가의 잊히지 않는 추억의 음식을 재현해 냄으로써 잠시나마 추억 여행을 하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한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상해버린 암 환자들은 항암 치료를 선택한 자신을 질타하곤 한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으려 고통을 참았건만 가혹하게도 치료 전보다 상태가 더 나빠져 차라리 추억거리나 만들 걸 하며 후회하는 이가 적지 않다. '라이온의 집'은 몸과 마음이 다 멍들어버린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호스피스로, 웰빙만큼이나 웰다잉이 중요함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두고 자신의 색을 입히며 살아간다. 열심히 살다 보니 마주한 죽음의 문턱에서 감사가 나오기 쉽지 않겠지만,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지켜주며 어루만져 주는 마돈나의 한 마디 한마디가 따스하게 다가온다.
"힘껏 불행을 삼키고, 토하는 숨을 감사로 바꾸면 당신의 인생은 곧 빛이 나겠지요." p.84
소설의 주인공 시즈쿠는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마를 대신해 시즈쿠를 거두어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빠로서 부족함이 없던 삼촌이었지만, 삼촌이 결혼한다고 하자 시즈쿠는 버림받은 것처럼 상처받는다. 혼자라고 느끼던 시즈쿠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엄마의 영을 마주하며 죽어서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왔다는 엄마의 고백에 30여 년간의 설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
"무엇이 중요한가 묻는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거야. 자기 몸으로 느끼는 것. 눈으로 보고 감동하고 만져보고 냄새를 느끼고, 그런 게 지금 엄마는 너무나 그리워. 몸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 게 의미가 있었다는 걸 엄마는 죽은 뒤 처음으로 알았단다."p.223
이어서 삼촌이 찾아오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동생이 있다는 말에,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 위로받는다. 라이온의 집은 다양한 연령대의 저마다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자신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 위로가 되어주며 생을 마감하는 따뜻한 이야기다.
'내일이 오는 걸 당연하게 믿을 수 있다는 건 정말로 행복한 일이구나.'p.9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온한 마음으로 다잡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라이온의 간식>에서 저자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은 다 내가 선택한 삶의 결과이기에, 나 스스로가 축복해야 한다며 생사의 기로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다독인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지만 사자가 적이 덮칠 거란 걱정 없이 살아가듯, 하루하루를 두려워하지 말고, 웃는 얼굴로 살아가라고 말이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빛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