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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26년 차 굴착기 기사였던 67세 남훈 씨는 은퇴를 결심하고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현해 나가는 따뜻한 이야기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겠지만, 탄탄한 플롯과 감동 스토리로 감정선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주인공 남훈 씨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스페인 여행을 꿈꾸고 플라멩코까지 배우는 남다른 열정의 소유자로 보이는 동시에 현시대의 또 다른 청춘 60대의 자화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자서전 '청년일지'의 과거를 회상하며 짤막하게 기록해 나간다.
전 부인과 이혼하면서 6살 난 딸 보연을 두고 떠나왔던 남훈 씨는 41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며 보연이를 데려오려 했으나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서 한동안 보연이의 존재를 잊고 살아왔다. 자서전을 쓰면서 40살이 된 딸아이를 만나고 싶지만, 한동안 연락 없던 아버지가 찾아온다는 것에 대해 주변의 청년의 온도차가 다르다. 부모가 없었던 시간을 보상해 줘야 한다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스페인어 강사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타인과의 삶이 행복해졌다며 딸의 생각을 들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며 딸과 대화할 때 스페인어식으로 말하라고 조언한다.
"아시죠? 스페인어는 '주어-동사-목적어'순으로 말합니다.
'내가 그동안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오늘에야 너를 찾았네. 미안하다.' 이게 아니라,
'내가 미안하다. 오늘에야 너를 찾아서.'
그렇게 말해야 하는 거예요." p.153
아내와 선아에게 보연의 존재에 대해 얘기하자,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선아는 스물넷에 배다른 언니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남자친구가 아버지는 책임감 있는 분이라는 설득에 감화되어 아버지가 보연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것을 응원한다. 아빠의 스페인어 강사가 딸아이의 남자친구라는 얽히고설킨 설정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의 재미를 더해준다.
"혼자서 멋지고 아름답게, 그런 삶을 난 몰라요. 혼자 있고 싶을 만큼 둘이라서 괴로운 적도 없고. 아무리 멋진 삶도 혼자서는 좋을 것 같지 않아. 나는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엄마처럼 좋은 아내가 되고 싶어요.
무엇보다……인생의 좋은 때를 사랑하는 사람고 보내고 싶어.
...
이 사람이랑 나랑 가장 예쁘고 건강할 때 다양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 그랬다가 먼 훗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매일매일 꺼내 볼 거야. 그러니까 아빠 내 말은,
내 인생은 내 거라고요."
<플라멩코를 추는 남자>는 코로나를 배경으로 평화롭던 가족에게 드러난 과거, 저마다의 입장 차가 있지만, 플라멩코를 출 때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듯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극복해가는 희망의 메시지를 강렬하고 속도감 있게 전개해 나간다. 코로나의 반전 이점이 가족의 재발견이었듯, 엄마와 딸의 관계와는 또 다른 아빠와 딸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가족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2시간 정도면 독파할 수 있는 흡입력 강한 한 편의 영화 같은 소설이다. 소설을 덮으니 문뜩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