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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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픔과 인생의 방황 앞에 놓인 30대의 성장통을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에서 김혜나 작가는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절절하면서도 담담하게 써내려가 독자의 감정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어떤 게 진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인지 모르겠어"

여여하고 싶은데 그 마음도 제 마음대로 되지가 않으니까요.. 끊임없이 무언가를 비교하고 판단하고 일일이 반응하는 제 마음을 조절할 수가 없고, 화내고 슬퍼하는 마음도 조절할 수가 없어요. 무기력하고 우울한 마음도 조절할 수가 없는 제 자신이 한심해서, 화가 계……속 나요." p.38

어린 시절부터 사랑과 관계의 허기를 먹는 것으로 해소하며 살아오던 윤희는 아이러니하게도 요가 강사가 되고, 처음으로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며 살갑게 다가온 요한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불같은 사랑에 빠진 요한은 건강이 온전치 못한 남자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윤희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그가 퍼붓는 욕설에 상처받으면서도 그의 육체적 고통을 해소하는 거라며 연민과 사랑으로 덮으려 하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던 요한의 부모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요한의 입은 더 험해지고 결국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했던 요한과 이별의 수순을 밟는다.

 

윤희는 자신으로부터, 자신이 속했던 삶으로부터 도망쳐 인도로 떠나오고, 케이라는 남자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속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비록 또 다른 아픔을 안기고 떠나버린 사람이지만, 그와의 짧은 시간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도 이 삶에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말이야,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쉬워질 줄만 알았어.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 답답해하는 것, 어려워하는 것이 모두 해결될 줄만 알았어. 나이가 들면서 육체는 노화하지만 이성은 발달하고 경험과 지혜는 쌓이는 거잖아. 그러면, 사는 게 좀 쉬워질 줄 알았어.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은 거야. 아니, 사실은 어릴 적보다 훨씬 더, 모든 게 다 어려워." p.80

아무리 가고 또 가도 어차피 출구는 없는데 어떻게든 그 출구를 찾아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나 자신 때문에 더 괴롭고 숨이 막히는 거야. 나는 나 자신을 바꿀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고, 이 미궁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살아갈 수도 없어. 나는 그냥 좀 쉬고 싶은데, 쉬어지지가 않아. 어떻게 하는 게 쉬는 건지, 날뛰는 마음을 어떻게 잠재우고 내려놓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아무리 열심히 요가를 하고, 아무리 오래 명상을 해도……어느 것 하나 내려놓아지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아...." p.83

차문디 언덕을 오르는 순간 고모가 자신의 상처를, 절망을 이야기할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에 유서도 없이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음을 이해하게 되며 결국 윤희도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답장이 없을지라도 상처가 아물 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겠다는 윤희의 다짐은 그녀가 한 단계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인도 사람들은 카스트제도에 의한 불평등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 것 자체에도 화가 난다는 윤희는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어릴 때부터 금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월세방을 전전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울분이 녹아있는 듯하다. 속사포같이 쏟아지는 그녀의 절규는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 속에서 불안함에 흔들리고 방황하는 30대를 대변하며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녀의 강렬한 서사는 머리가 클수록 세상이 녹록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나의 생각과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기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수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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