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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평점 :
부정부패를 일삼는 이들의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집행관들>은 그들의 죄를 묻고 심판하는 집행관들의 치밀하고도 대담한 횡보를 미친 속도감으로 전개해 나가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역사학자 최주호 교수는 어느 날,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동창 허동식에게 친일 고문 경찰관 노창룡과 그가 사용했던 고문 기구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부탁받는다. 얼마 후, 노창룡은 국내에 밀입국했다가 한 폐가에서 숨진 채 발견되며 온 나라가 들썩인다. 사건 현장에는 보란 듯이 고문 기구와 함께 노 씨의 몸은 단단한 가죽끈으로 묶여 있었고, 신체 일부가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등에 의문의 아라비아 숫자가 쓰여있었다. 별 뜻 없이 동창을 도와준 최 교수는 노창룡이 처참히 살해당한 방식이 자신이 건네준 자료와 일치함에 따라 자신이 원치 않게 살인 사건과 연루되었음을 직감한다. 이어서 두 번째 변사체가 발견되고 이 사건은 조선 시대의 극형으로 부패한 정치인을 처단한다. 최 교수는 용의자를 추적하다 수사대의 물망에 오르고, 보이지 않는 조직은 타지에 있는 최 교수의 아내와 딸을 볼모 삼아 조직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검경은 변사체에 새겨진 아라비아 숫자가 피해자의 살인 명분이 된 법 조항임을 깨닫는다. 역사의 한 단면을 교훈 삼아 부패 관리를 응징하고 처벌하겠다는 놀라운 연출과 소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집행관들의 행적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자비는 없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매서운 칼날을 피해 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무나 표적으로 삼는 건 아니다. 엄청난 양의 비리 자료와 부패 보고서를 집행의 근거로 삼는다. 그들은 이성적이면서도 냉철하다.'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아쉬운 사회에 살고 있다. <집행관들>의 거침없는 스토리 전개는 비록 집행관들의 생명을 단죄하고, 살인을 자행하는 행위는 어떠한 사유로도 용납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들의 뜨거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죄 있는 사람은 죄를 받아야 한다'라는 명분에 통쾌한 희열을 느끼게 한다. 살생부를 만들어 타깃을 설정하면서도 사사로운 개인의 욕심을 배제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집행관들과 서서히 좁혀오면서 집행관의 실체에 다가오는 수사관들의 반전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완성도 높은 플롯이다. 400 페이지 넘는 소설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몰입되어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