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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평점 :
청초하면서도 눈시울이 붉은 아리따운 여성의 표지가 눈에 들어오는 <난설헌>은 제 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의 삶을 담아낸 소설이다.
명망 높고 타고난 문장가인 아버지 허엽은 가부장적인 조선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딸이라 차별치않고 아들들과 동일하게 글 공부를 가르쳤다. 허난설헌이란 인물은 조선시대의 천재 시인이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마음에 품은 이와 결혼하지 못하고, 안동 김씨 가문과 결혼하면서 난설헌의 비극은 시작된다.
"나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여인들의 목소리가 담벼락을 넘으면 안 된다는 남존여비의 금기와 여자가 글을 밝히면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은 여인들의 지적 갈망에 족쇄를 채운 시대였다. 하물며 유려한 문장력을 지닌 난설헌은 여리여리한 몸매에 미색까지 고와 시어머니의 미움을 한 몸에 받게 된다. 빼어난 인물이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에 의해서 비극이 시작되는데, 난설헌도 군계일학의 외모와 뛰어난 감수성의 천재 시인이라는 재능이 그녀를 27살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게 만든 것같다.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는 신랑은 자격지심과 어머니의 성화에 초희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도 시집살이에 맘 편할 날이 없던 어느 날 자신을 존중하고 어여삐 여기던 아버지가 객사하게 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 되지 않아 둘째를 임신하지만, 몸은 야위어 가고 처가로 요양가며 몸음 조금씩 회복하지만 아들을 낳고 돌아오자마자 어머니의 냉대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간다. 아이들을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별채에서 거하는 난설헌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오라버니가 유배지에서 풀리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딸과 아들마저 먼저 앞세우는 상실의 고통속에 마른 송장처럼 야위어가던 난설헌은 죽음을 직감하고 준비한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생은 끊임없이 생성의 과정이기에, 그 긴 노정 속에서 누군가에게 소유되는 순간, 생 그 자체가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그건 이미 생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의 여인들의 이야기 같다며 읊조리는 초희가 처연하기만하다.시대를 잘못 태어나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내지도 못한채 결혼이라는 오랏줄에 감기며 삶이 어두워져버린 그녀의 인생사를 읽으며 일전에 허난설헌 생가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즈넉한 고택과 오죽헌을 둘러보다가 책을 읽고 있는 허난설헌의 동상을 마주하며 조선시대의 시인답게 서책을 가까이 했구나 생각만했지 그녀의 삶이 이토록 기구했는지는 미처 몰랐었다. <난설헌>은 한 맺힌 아리따운 여인의 삶을 재조명하며 인물의 감정과 시대상을 섬세하게 묘사해 조선 시대로 타임슬립한 듯 매혹시키는 한편 독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