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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의 거울
호은 리베라타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1월
평점 :
<실리의 거울>은 판타지 소설 같은 표지와 제목이지만 내용은 다소 심오하면서도 철학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처음에는 외국인 저자인 줄 알았으나 역자도 없고 리베라타가 본문에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한국인으로 추정된다.
<실리의 거울>은 목차를 중심으로 소설을 음미해야 실리의 탄생과 더불어 실리의 거울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쉽지 않은 소설이다. 실리가 만나고 마주하며 알아보는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곳곳에서 한 번씩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가슴이 말하는 소리를 알아듣는 존재는 종중 자체입니다. 마음이 느끼지 못하는 일과 존엄이 위협받을 때, 가슴은 소리로 알려줍니다. 가슴을 믿고 아직도 붙잡고 있는 불편한 감정이 있다면 자유롭게 놓아버리세요."
"우주는 다음이 아니라 지금이다. 무한과 유한의 양면을 가졌고 연결이 그것을 불안정하게 다루고 있지. 무한대를 무엇으로 알고 있느냐?"
"수가 아니라 과정이잖아요."
......
"지금이다. 지금이 쌓이고 축적되어 연결되는 것이지 과정이라고 특정해서도 안된다. 과정이라 하면 결과를 말하는 것이고 끝일뿐이다."
고귀한 신분에서 태어난 아이가 비천한 자리에서 커가고, 선택받은 가문은 어려운 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운명으로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영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때로는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또 나를 건드리는 거야."라며 운명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영혼에게 자신을 사랑하라는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흐름이 흐름을 통해 흐르게 하라는 메시지를 음미해본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관계도가 한 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 판타지스럽게 시공간을 넘나들며 미지의 세계를 표방하지만, 곳곳에 스며든 동양적인 느낌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은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