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어느 여인의 이야기 같은 느낌의 표지가 돋보이는 소설 <노라와 모라>는 부모의 재혼으로 만난 노라와 모라의 이야기다. 함께 산 7년이란 시간동안 노라와 모라가 느낀 감정들을 20년이 지나 재회한 노라의 시선에서 모라의 시선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la. 거기라는 뜻이다.' 라는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의 이름과 제목에 부여된 '라'에 작가가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성은 노, 이름은 라. 돌배나물이라는 뜻이라고 소개하는 노라가 누군가와 함께 살았다고 느끼는 시간은 가지런한 그물이라는 뜻의 모라와 함께 살았던 시간뿐이었다. 모라의 아버지 회사가 어려워지며 이혼하면서 노라와 모라도 헤어진다. 20여 년이 지난 후, 모라가 노라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며 노라에게 재회하게 된다.
나는 울고 싶지 않다.
울지 않기 위해 노라와 함께 온 거였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느낀 건 상대적인 온도였고 절대적인 고요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고요하고 따뜻한 실감. 나는 한동안 혼자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그 밤의 순간을 떠올리곤 했다. 어쩌면 20여 년 만에 노라에게 연락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밤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게는 있고 노라에게는 없는, 살을 맞댄 실감의 기억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곁에 있었지만 없었던 존재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혼자서 하나되는 법을 배워간다. 노라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온기를 느끼며 안심했던 그날 밤을 모라는 노라의 온기를 느끼며 따뜻해 했던 기억이 자신만의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불 속이 꿈처럼 따뜻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노라 역시 그날 밤이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말이다. 그랬기에 노라가 '하나였던 때가 있으니까.'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노라는 늘 거기에 있었는데 말이다.
차가운 엄마 밑에서 자라며 공감력이 떨어지던 노라에게 따뜻한 온기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모라. 그 순간의 기억이 노라와 모라의 외로운 삶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는 사실이 따스하게 전해지는 소설이다. 이제 없는 세계는 아예 없는 것일까. 하나였던 어떤 시간을 되풀이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는 노라의 이야기 처럼, 우리는 소중한 추억이 있기에 고된 삶을 버텨 나가고,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있거나 없는 것, 그건 우리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연락하면 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희망의 끊을 놓지 않으며 마무리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한결 더 따스하게 만들어 주는데는 작가의 서정적인 문체가 한몫 한것 같다. 따스한 소설 덕에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