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더불의 서양 철학의 위대한 4대 철학자로 손꼽히는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에 공리주의가 무엇인지, 공리주의와 공리주의가 아닌 것을 분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물질적인 쾌락보다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가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가 하는 유용성과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즉, 행복이라는 목적을 얻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으로, 공리를 통해 행복으로 가는 길을 의미해 '행복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공리주의는 인간을 언제나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하는 본성을 지닌 존재로 여긴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판단 역시 공리적 인간관에 기초하므로, 인간의 쾌락과 행복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옳은 행동이 되며, 만약 고통과 불행을 증진시켜 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그른 행동이 된다. 나아가 사회의 행복을 최대로 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리주의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실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공리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은 광적인 황홀함이 아니다. 몇 안 되는 일시적인 고통과 다수의 다양한 쾌락들로 이루어진 인생에서, 긍정이 부정을 압도하고, 전체 삶의 밑바탕으로서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순간들, 바로 그런 순간들을 가리켜 행복이라고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스승인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기초로 하되 인간이 동물적인 본성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질적으로 높고 고상한 쾌락을 추구한다고 보며 '쾌락의 질적 차이'를 주장하였다. 이른바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라는 것이다.
또한 양심의 내부적인 제재가 되는 인류애를 중시했다. 우리의 의무 기준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의무를 강제하는 내부 제재는 단 하나, 우리 마음의 느낌이라고 한다. 의무를 위반할 때 우리는 강렬한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데, 적절한 도덕적 품성을 갖춘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안이 중대할수록 고통의 강도가 세져서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는 아예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인식되어 있었을 뿐이었는데, 행복, 평등, 재분배, 정의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공공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 소수의 의견은 묵살하지 않으려 유의하는 등, 공리주의의 이상적인 이론은 현실과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