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시대, 예술의 길
김선영 지음 / 봄봄스토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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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이 우리 삶의 영역에서 닿지 않는 부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4차산업시대, 예술의 길>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방안과 예술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는 책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예술작품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딥러닝을 통해 인공지능이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곡을 작곡하는 인공지능이 있는가 하면, 영화 예고편을 하루에 10편이나 제작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실수마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인간에게 쉬운 것은 컴퓨터에게 어렵고,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컴퓨터에게 오히려 쉽다는 아이러니의 '모라벡의 역설, 할 줄은 알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식과 능력을 인간인지의 특징이라고 정의한 마이클 폴라니의 역설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 경험 총체성의 정수라는 저자의 말처럼, 아직까지는 인간의 경험치를 로봇에 모두 입력해 줄 수 없다. 인간의 입력값에 의해 예술작품을 생성하는 인공지능의 작품은 인간의 고뇌가 깃든 작품을 대체하지는 못할 테지만, 예술계의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의 SNS를 보며 가장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SNS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가장 좋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서로가 부러움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동시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존감이 패이기도 하고, 고독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예술적인 접근으로는 '자화상 그리기'가 자아 성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자화상은 어원 그대로 사람의 영혼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반 고흐나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그들의 열정과 고뇌를 엿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영혼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나 보다. 자화상을 그리면 예술을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동시에 무너져 가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신선했다.

평창올림픽에 등장한 인면조는 움직이는 예술 작품으로 호기심을 자아내며 비난과 호평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작품 자체가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는 무중력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키네틱 아트의 무중력감은 1930년대에 모빌을 처음 전시한 알렉산더 칼더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작년에 K 현대 미술관에서 모빌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전이 있었다. 그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어 색감도 몬드리안의 컬러감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또한 공기의 흐름이나 보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칼더의 모빌 조각은 장난감 서커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졌는데 그의 직관력을 알 수 있었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예술은 이치로 따져서는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어려운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시키는 일이다. 대개 정말로 예술적 인상을 받으면 모두가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다만 표현을 못 했던 것처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하나의 예술작품에는 그 작가의 모든 인생이 녹아 있다. 익숙한 것을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어내기 위한 고뇌의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나는 이 창의력의 산물인 예술작품을 인간 지능이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인공지능 또한 인간의 창의력의 산물이기에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며,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문화계의 새로운 장을 펼치지 않을까 기대할 따름이다. 드론이 수놓은 음악회도 경이로웠는데 또 어떠한 예술 공연이 탄생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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