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교양 고전 Pick 1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임경민 옮김 / 지식여행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상을 그려낸 비극적인 영웅이 주인공인 소설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비교하며 현시대에 필요한 인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돈키호테는 소탈하면서도 앞뒤 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저돌적인 인간형으로 묘사되는데, 저자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의 면면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오해를 풀어준다. 돈키호테는 "나는 라만차의 기사이니라. 내 이름은 돈키호테요, 내게 주어진 소명은 세상을 떠돌며 불의와 맞서 싸우고 불의를 벌하는 일이니라."라고 천명하며 온 힘을 다해 부정과 불행을 벌한다. 또한 돈키호테는 자유를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는 자산으로 여기며, 인간의 존귀함은 덕성에 있다고 말하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앞뒤 분간 없이 말하는 이들에게 돈키호테적 발상이라며 산초 판사를 데리고 다니며 기사 수업을 하는 그를 비웃었던 우리는 지금껏 그에 대해 깊은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마도 1000 페이지 분량의 책인 <돈키호테>를 정독한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반면에 한 나라의 왕자인 햄릿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이른 재혼을 석연치 않게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암살 당한 것임을 암시하는 꿈을 꾸면서 사건을 파헤쳐 나가게 된다. 그는 사색적이지만 천성이 우유부단한 탓에 악을 처벌할 책임이 본인에게 있으나 응징할 시간이 자신에게 없음을 한탄하고 만다.

햄릿과 돈키호테는 출생 신분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자신의 분노에 의한 복수가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한 처벌을 한다는 공통점,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벗이 있었다는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다. 나아가 위대한 걸작을 남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같은 날 생을 마감하는 우연까지 말이다. '인간은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고 모든 것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햄릿과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것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돈키호테의 성격은 대조적이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햄릿을 더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창성을 요구하는 현시대에 어울리는 시대상에는 사려 깊고 다재다능하지만 소극적인 햄릿형 인간이 필요할까? 아니면 오직 하나의 목표에 거침없이 돌진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상이 어울리는 것일까. 저자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키호테 한쪽에 편중되기보다는 두 인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선을 추구하는 인간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페인에는 아직도 돈키호테의 흔적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스페인 광장에는 돈키호테의 장면들이 곳곳에 벽화로 그려져 있고, 라만차의 풍차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방문한다. 라만차는 돈키호테가 풍차에 저돌적으로 돌진하며 웃음거리가 된 장소로 평온하기 그지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내가 라만차를 방문했을 때 역시 바람이 많이 불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 프리스톤이 둔갑한 것으로 여기고 싸움을 벌이다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할 만큼 말이다. 저자가 풀어낸 돈키호테라는 인물에 호기심이 생겨 스페인 여행 전 잠시 읽었던 <돈키호테>를 언젠가는 정독하고 싶어졌다.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는 지식여행의 교양 고전 pick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동시대의 소설을 주인공의 가치관, 주변, 사랑에 대한 가치관들을 비교한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관점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잘 만들어진 강의를 본 듯한 시간을 선사했다. 시리즈로 나온다고 하니 차기작 <로마인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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