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의 순수학문 예찬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지음, 김아림 옮김 / 책세상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초대소장인 플렉스너의 에세이'쓸모없는 지식의 쓸모'와 현 소장인 데이크흐라프의 플렉스너에 대한 오마주 에세이 '내일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적 이해와 무관한 호기심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이어가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철학을 이야기하며 실용적 성과만을 강조하는 현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플렉스너는 1930년 뱀버거 가문의 후원으로 '제한과 규정이 없는 학문을 전담하는 연구소'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를 창립한다. 히틀러의 독재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유대인 학자들은 1933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초대 구성원이 된다. 이어서 록팰러재단과 협력하여 유럽 출신의 인재들을 미국으로 초빙하면서 학문의 무게 중심이 미국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플렉스너가 뱀버거 가문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윤을 추구하던 가문에게 순수학문 연구기관을 설립하도록 설득하지 않았다면 아인슈타인의 업적이 남을 수 있었을까? 순수과학자들이 왜 플렉스너에게 열광하고 경의를 표하는지 이 100페이지 남짓한 책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플렉스너는 우연한 발견에 힘입은 인간의 호기심이야말로 진정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진보적 기술을 가로막는 정신적 벽을 부술 만한 강력한 힘이라 여겼다.또한 사후적인 판단과 깨달음이 있어야 만 지식의 긴 궤적을 분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지식은 아무 제약 없는 질문에서 시작해 실질적 적용으로 끝이 난다는 것이다. 플렉스너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와 미래 세계의 진보는, 기술적인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당장의 실용적인 고려와는 반대로 거칠 것 없는 호기심과 그것이 주는 이득, 즐거움에 담겨있다.

 

저자는 기초학문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기초학문 연구가 그 자체로 지식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무용한 지식의 유용성'이 지식 생태계 전반에 폭넓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은 사용할수록 늘어나는 유일한 자원으로 지식의 토대가 충분히 연구되었을 때 비로소 지식의 무한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신 정보로 무장하고 과학에 소양이 있는 시민들은 기후 변화, 원자력 발전, 백신 접종, 유전자 변형 식품 같은 '고질적인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더욱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대중이 과학에 참여하면 비판적 질문, 사실과 불확실성의 존중, 자연과 인간 정신의 풍요로움을 경험하며 사회가 근본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과학의 전체 역사에서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유익하다고 드러난 정말로 위대한 발견들은 대부분 유용성이 아닌 단지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는 성과에 연연하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다.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호기심이야말로 현대 사상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일 겁니다. 그건 결코 새롭게 생겨난 특징이 아니지요. 갈릴레오와 베이컨, 뉴턴 경의 시기에도 존재했습니다. 호기심은 그 무엇에도 절대로 방해받지 않아야 합니다. 교육기관은 호기심을 기르는 데 이바지해야 하며, 호기심이 지식의 직접적인 실용성과 적용의 고려로 왜곡되는 일을 줄여야만 합니다. 이 과정은 인류의 복지에 기여할 뿐 아니라 인류에게 동등하게 중요한 지적인 흥미를 만족시키는 일에 도움을 줍니다. 이것은 현대인의 지적 생활을 지배하는 열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우리가 지금 알고 이해하는 모든 것에 한정되어 있지만, 상상력은 온 세상을 포용하며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앞으로 알고 이해하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고 성과에 연연하다 보면 우리는 더 먼 미래를 바라볼 수 없다. '상상력이란 언덕 너머 미지의 뒤편까지 보는 힘이다. 그리고 호기심은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올라가려는 인간의 타고난 충동이다.' 미지의 세계를 보는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야 말로 후대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에서는 '인류의 진정한 적은 용감하고 책임 없는 사상가가 아니다. 인류의 진짜 적은 인간이 정신이 날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틀에 가둬 주조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의 성과가 없다고 해서 결코 쓸모없는 지식은 아니다. 우리의 사고가 갇혀 있지 않고, 무한한 시너지를 펼쳐 더 발전된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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