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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소원을 말해줘>는 김유정 소설문학상 수상 작가인 이경의 첫
장편소설로, 2019 한국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인간의 몸을 착취하는 지배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시민들은 현실 너머를 바라보아야 한다며 제약/바이오산업을 기반으로 한 거대 자본과 시민들의 대립구도를 그려냈다.
제약 회사가 지배하는 인구 50만의 기획 도시 석 달 전에 산사태로 동물원이
무너지면서 야생동물들이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는 일이 발생해 도시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파충류 사육사인 그녀는 비단뱀을 찾기 위해 D 구역으로
간다. D 구역은 피부 각화증이 심해져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몸을 뒤덮는 풍토병을 앓는 이들이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는 지역이다. 이들은
전설 속 '롱롱'이라는 뱀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 허물이 벗겨진다고 믿고 있었다.
"프로틴은커녕 끼니도 잘 챙기지 못하니 허물은 금방 자라났다. 별 수없이
다시 공원으로 와 전처럼 공원 관리인과 숨바꼭질하며 지냈다. 밤이면 벤치에 누워 생각했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그녀는 시민들의 허물을 벗겨내는 도시 내 유일한 기관인 방역센터에 입소했다.
방역센터에서 허물을 벗고 퇴소하면 다시 허물을 입게 되는 악순환이라는 걸 알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다. 방역센터에서 만난 이들에게서 전설의 뱀
롱롱이 아궁이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뱀을 꺼내 타이어 동굴 속에 숨긴다. 뱀이 허물을 벗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전설의 진위 여부가 그때
밝혀지는 것이다.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믿음은 저절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택하는 게야. 제 손으로 터를 파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집을 짓는 것이지. 너는 스스로 허물을 벗으면 마땅히 다시는 입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게지."
다른 구역 사람들에게 D 구역 사람들의 피부는 깨끗하다 해도 깨끗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숙주와 다르지 않았다.
소설에 몰입되어 읽다 보면, 오싹해질 정도로 섬세한 묘사가 압권이다.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
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소원을 말해줘>는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간절한 소원을 그려낸 재난 소설로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바라보고 말하는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