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이유림.윤정원 옮김 / 한문화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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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왜 여성의 말을 믿지 않는가>는 성편견과 무지로 여성을 무시하고 오진하는 의학계의 공공연한 민낯을 드러내는 책이다. 응급실에서 복통 치료를 받기까지 남성은 평균 49분이 걸리지만, 여성은 65분을 기다려야 하고, 심장마비의 젊은 여성이 집으로 귀가하는 확률은 남성보다 7배 높다고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진료실에서 마저 성편견으로 차별받는 여성들의 아플 권리에 대한 보고서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여성의 증상은 우울, 불안,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며 자주 무시된다. 때로는 월경통, 폐경 심지어 임신 등 여성의 정상적인 생리적 상태와 주기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질병과 관계없는 환자의 상태가 더 주목받기도 한다. 살찐 여성의 질환은 비만 탓으로 돌린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겪는 증상은 모두 호르몬 치료 탓이다. 흑인 여성은 처방전이 필요한 약에 중독됐다고 생각하고 이들이 호소하는 통증 자체를 의심한다.

지금껏 여성의 병적 증상을 히스테리라는 진단명으로 치부하다가 19세기 말에 히스테리를 심리적 문제로 진단하기 시작했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혈액검사와 신기술로 진단 가능하게 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질병은 마음의 탓으로 돌려왔던 것이다.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증상 앞에서 '스트레스'라는 요인은 왜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칠까? 심장마비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증세가 와도 심인성으로 여긴다. 예를 들면, 우울증 병력을 가진 한 중년 여성은 3년간 복통을 월경통으로 무시했다. 심지어 가족력에 대장암이 있고, 직장 출혈이 있었음에도 의사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결국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3기 대장암으로 밝혀졌다. 또 항우울제를 불규칙하게 복용해온 여성은 몇 년 동안 어지럼증, 시력 저하, 체중 증가 등 신체에 일어난 여러 가지 변화를 의사에게 상담했으나 '항우울제'처방에 관하여 얘기하면 원인은 스트레스로 돌렸다고 한다. 이에 다른 의사를 찾아 진지하게 상담한 결과 갑상샘암 검사로 판단되었다. 이처럼 의사들의 오진 사례가 적지 않음에도 의사들의 문제는 수면 위로 오르지 않는 실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는 자신이 오진했다는 사실조차 환자가 찾아와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가고 있어 매우 심각하다.

"히스테릭하게 보이지 않고, 별로 아프지 않은 척하면서 통증이 어느 정도로 심한지를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 이러한 바늘구멍이 지나는 일도 끝도 없이 이어지며, 때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눈에 보이는 통증의 원인이 없는 상태에서는 환자의 통증 호소만이 유일한 증거다. 그러나 통증을 설명하는 여성의 표현은 언어적인 표현이든 찡그린 표정이든 눈물이든 감정적으로 보이기 쉬우므로, 만성통증을 앓는 많은 여성은 의료진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극도로 자제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엘리트로 살아온 의사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여성의 몸이 남성들과 다르다는 점을 시작으로 본인들의 지식의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여성의 몸과 호르몬 변화에 따른 신체의 변화를 공부해야 한다. 환자가 겪고 있는 증상들만 알아도 유사한 병들을 걸러내고 환자의 병명을 진단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특권에 목메는 의사보다 의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되새겨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진단하는 진정성 있는 의사가 많아져야 함은 물론이고, 잘 모르겠으면 인정하고 오진을 줄여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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