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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가족과 못다 한 삶을 후회하는 남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안한 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일생일대의 거래>는 한 생명을 구하려면 어떤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비단 미래의
나를 희생하는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나, 그리고 나의 발자취 전부를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기란 상상하기도 어렵다. 저자는 누군가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본 적이 있어야 시간의 중요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은 "안녕,
아빠다."로 시작한다. 아빠가 자식에게 전하는 이야기라 따뜻할 것만 같은 이야기가 바로 다음 문장에 나는 사람을 죽였다.라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언제나 그렇듯 프레드릭 배크만의 문체는 간결해 내 눈과 손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생일대의 거래>의 주인공은 세상 모든 물건에 값을 매기며 부와
숫자만을 쫓아 살아온 냉혈한이다.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고향에서 바텐더로 살면서도 행복해하는 소박한 아들이 자신과 너무 안 맞아 소원하게
지내왔다. 그러나 그는 암 선고를 받게 되고 난 뒤, 매일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창문 밖에서 지켜보는 게 일과가 되어버린 아버지일 뿐이었다.
주인공은 비록 사회에서 성공했지만, 가정에서는 실패한 한 남자에 불과했다. 사망 병부를 든 사신이 그에게 다가와 죽음을 목전에 두면서 과거를
돌이킬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승부수를 띄우려 한다.
'죽음을 죽음으로 바꾸는 건 못해. 목숨을 목숨으로 바꾼다면 모를까.' 이
의미심장한 말은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 건지. 죽음과 목숨의 차이라.. 평생 쌓아올린 모든 업적과 흔적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지, 심지어 살아온 발자취와 희생했다는 기록까지 지워진다면,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해 나를 대체하고, 아니 나라는 존재가 아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아득하다.
"1초는 항상 1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한 가지가 그 1초의 가치다. 모두가 항상 줄기차게 협상을 한다. 날마다 인생을 걸고 거래를 한다. 이게 내 거래
조건이었다. <일생일대의 거래>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인 배크만 특유의 서정미가 녹아있는 소설이다. 너무 짧은 분량이 아쉽지만, 두
번 세 번 읽으며 곱씹어지게 되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진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으로 기리고 기억하는
사람은 비록 몸은 이승에 있지만 영원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이 악물고 살아가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쌓아가며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쌓은 좋은 기억을 한 번씩 꺼내어 생각해 보면 버틸
힘이 생기듯 말이다. 주인공은 병원에서 만난 5살의 어린 소녀가 엄마와 아빠를 위해 웃음 짓고 용기 있는 모습을 보며, 가치 있는 삶을
마무리하려고 죽음 앞에 의연해 지려고 한다. 이 세상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비슷비슷한 걸까. 서먹서먹한 부자지간에 기적 같은 순간이 너무
늦지 않게 찾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