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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넌 마누라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
"네년이 먼저
후지오카인가 후리오카인가 하는 쪽발이하고 붙어먹었잖여."
"내가 붙어먹는 거 네가
봤간디?"
"다 들었어, 이년아.
67년이여, 이제 67년 세월을 보내고 그걸 뒤집으려 하면 안 되는 거여. 지난 67년이 내겐 하루도 빼지 않고 피가 끓는 세월이었지만 끝순이,
네가 그냥 잘못혔다고 하면 죽을 때 다 되었으니 받아주진 못혀도 용서할 마음은 있어. 그러니까 괜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잘못혔다고 한마디만
혀라."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터뜨리게 하는 스토리로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다. 이미 연극, 영화, 드라마, 뮤지컬 판권이 모두 팔린
소설로, SBS 주말 드라마<떴다 패밀리>로 독자와 만났고, 연극과 뮤지컬은 제작 중이라고 한다. 소설적인 단순한 재미뿐만 아니라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바로 '귀환의 서사'는 대개 남성 위주였다. 여성은 떠나면 잊힐 뿐, 금의환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소 엉뚱한 캐릭터인
정끝순 여사이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사랑했던 이들이 하나씩 떠나가는 시점에, 첫사랑을 찾아 그리고 마음에 한이 된 가족을 찾아 67년 만에
돌아온 스토리 전개가 드라마틱 하다.
가족과 나라를 배신한
파렴치한 매국노로 각인되어 떠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 가족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는 자신을 쫓아내려 하는 가족들에게 유산 60억을
증여하겠다고 말한다. 할머니의 아들, 딸, 그리고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까지 돈에 관심을 가지며 인간의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돈을 받기
위해 잘 보이려 갖은 꾀를 다 내보이면서도 진짜 유산이 있는지 뒷조사하는 자식들을 보며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할까. 돈을 무기로 효도 경쟁을
시키기도 하고, 할매의 과거에 대해 관심도 없고 돈에만 관심을 갖는 가족들을 가족을 호되게 혼쭐 내기도 하면서 한 집안의 어른 역할을 하고 있는
할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정끝순 여사의 마녀사냥은 남자의 사랑, 그리고 질투에 어린 남자의 거짓말에서 시작되었다는 부분에서 가부장적인
대한민국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남자들은 불안하거나 무서우면 집안에서 자기 여자한테 화풀이한다며, 밖에서는 말도 못 하면서 그 원망을 집에서
소리 지르고, 화내다가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는 옛이야기가 아닌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다. 참아 내는 것은 여자의 몫일까, 이런 소설은 남성들이
많이 읽어야 하는데, 소설의 주 독자층이 여성이라는 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