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지음 / 수카 / 2019년 9월
평점 :
이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면. 이 갈대밭이 우리의 마지막 자유라면.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웃옷과 바지를 벗어던졌다. 해야는 이상한 나의 행동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벌거벗은 채로 정갈한 갈대밭에 미친 사람처럼 도약했다. 지금부터 그려질 갈색 도화지 위의 작품은 오직 해야를 위한 것이었다.
천재 뮤지션으로 알려진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처음 펴낸 소설 『물 만난
물고기』.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짙고 푸른 물음과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빛나는 삶의 순간들에 대한 감성 아티스트의 시선이
돋보인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사람."
그건 손이 떨리도록 멋진 말이었다.
나는 다짐했다.
수많은 거짓과 모방이 판치는 그곳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사이에서 진짜가 될 수 있다면,
그때 진정한 예술가로서 음악을 할
것이라고.
주인공 선은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길에서 만난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거나 이상한 세계에 도취되어 있었다. 갈증이 해소되지 않은 마지막 여정에서 우연히 한 여인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삶의 해답을 그녀와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깊은 의문이 풀려가는데...
"항상 괜찮았어요, 나는."
"이봐요, 울지 않는다고 괜찮은 게
아니었다고요."
"맞아요, 아팠어요. 아팠지만 좋은 아픔이었어요. 슬픔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얼마나 처절하고 아프게 하던지요. 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았죠. 이별이라고 했죠? 난 그저 그걸 배운
거예요."
특별한 자리에 핀 꽃들 대부분은 스스로 괴로워하다가 죽어요. 여기 있던 파란
꽃들은 하얀 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주위의 꽃들이 하얀 꽃을 얼마나 따돌리고 무시했을지 생각해봐요. 특별한 꽃들은
매일 괴로움에 몸부림쳐요. 자신도 자신의 색깔이 달랐다고 생각하니까요. 특별한 꽃들은 아무리 물을 주어도 그렇게 서서히 고통 속에 말라죽어요.
나의 역할은 그런 꽃이 아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작을 때, 태어나자마자 잘라주는 거예요.
바람처럼, 마음껏 소설 속에서 호흡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소설 『물 만난 물고기』. 저자의 첫 소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는데 스토리 전개가 인상적이다.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사랑의 환희와 상실의 상흔 등 삶의 의미를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내 가을밤 내 감성을 어루만져 줄 도서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