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생명의 역사, 우주공간에서 우리가 어디에 머물고, 또 어디로
사라지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흔적과 신호』에 인류의 역사 속에서 생명의 가치를 가진 신호를 찾아가는 사유의 과정을 담아냈다. 우리가 단지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고, 죽어야 하는 운명이기에 죽는다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성찰을 통해서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와 죽음이 왜 생명인지 깨닫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될 거라 말한다.
인간이 문자와 기호를 가지고 다양한 사유와 철학, 다양한 이데올로기, 종교,
공간을 이루며 살아가지만 과연 문명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가져왔지만,
자연재해 보다 인재를 두려워해야 하고,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져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결국 문명은 인간의 우월함을 드러내지만,
우주의 질서에서 인간을 고립시키기도 한다.
우주 공간의 양자는 모든 생명의 정보를 기록하는 놀라운 현상을 DNA라는
흔적으로 남기고 있다. 그 흔적이 생명 질서로 이어져 오는 그 끝점에 호모사피엔스가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생명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현생 인류의 학명이다. 호모사피엔스는 30만 년 전에 등장하여 어떤 생명체도 만들 수 없는 문명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간의 주체는 인간이다.
동양 철학의 사유에서 인간이란 서로 받들고 협력하면서 공간 사이로 왕래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광대한 우주의 푸른 행성 지국의 공간에 머물러,
어둠 속에 별빛을 바라보면서 봄날의 개나리꽃을 노래하는 존재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아직도 무지하고, 불안정하고, 불확실성 존재다. 그래서
아름답고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다.
저자는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이 말해지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고민하는 사람일
것이라며 우리가 알고 있다 믿는 것들 모두가 부정확할 수 있고 틀릴 수 있다 말한다. 이러한 고백은 무의식을 향해 아름답고 새로워지게 하는
생명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한다. 자신의 믿음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고, 배울 수 없다. 삶을 고백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말할 수 있으면서도 부족한 자신의 한계를 고민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에는 늘 무지에 대한 신선함이 있기에
아름다운 고백을 통해 생명의 가치를 구현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저자는 철학과
신학을 접하며 이성적인 절대 진리로 무장한 도덕주의자로 살았으나 상징적인 개념으로 편집된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을 숨기는 위선자의 모습이었다
한다. 그러다 정신분석학을 만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자신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진실로 이야기해야 한다. 이 고백은 정직한 삶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과정으로 불확실성으로 불안해하고 고통받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여 우리 체내의 단백질이 '새로운 정보'에 반응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우리 존재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지만, 하나씩 알아가면서 우주의 공간, 지구의 공간, 인간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껏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이성적인 고통의 흔적을 남겨왔지만, 신비한 삶으로 다가가기 위해 용기를
내어 절대적인 위로를 받기를 희망한다.